▲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11월 24일 점심시간에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배달직원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상석씨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기사] 라이더 2명 중 1명 "사고 경험"... 산재 처리는 2.6%
"살면서 병원 한 번 가본 적 없다"고 건강을 자부했던 유상석은 배달대행 라이더로 일하면서 산업재해 문제를 피부로 느꼈다. 2019년 5월, '라이더유니온'(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라이더유니온에서 '라이더도 산재 들어야 해, 산재 들어줘' 외칠 때였어요. 노조 활동은 처음이었죠. 그래도 라이더유니온과 뜻이 맞는다면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산재 문제에 대해서만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이, 한 가족의 삶이 휘청이는 일이다. 이것만큼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라이더유니온과 만난 뒤, 유상석은 배달대행 라이더의 현실을 전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에 서는 일이 잦아졌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서른 살 무렵 '한국 1호 아이디어 컨설턴트'라는 타이틀로 지상파 아침방송에 고정 코너를 맡아 반년을 진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창업 아이템이 될 다양한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19살에 서초동 건축설계사 사무소의 실습생으로 시작된 유상석의 이력은 매우 다채롭다. 10년간 건축설계를 한 뒤, 회사를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디어 컨설턴트'와 방송 진행자를 거쳐, 서른넷에는 냉면으로 잘 알려진 '모란각' 대표를 2년간 맡았다. 그 뒤 창업 전문 강사로 활동하다가 마흔 가까운 나이에 대기업 인력기획부서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안정적인 벌이를 뒤로하고 나온 건 창의적인 일이 고팠기 때문이다.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는다면 '발명가'다. 유상석은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때 가장 신이 났다. 대기업을 나온 뒤 그는 고액 보험을 주로 취급하는 보험설계사를 거쳐,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꽃'을 만드는 일었다. 생화가 아니라, 인테리어용으로 비싸게 팔리는 조화다. '천'이 아니라 '클레이'를 이용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클레이로 만든 꽃은 착향 할 수 있어요. 샤넬 향을 붙이면 샤넬 향이 나는 거죠. 야광 안료를 넣어서 어두운 곳에서 빛이 나는 꽃도 만들었어요. 안료를 비율별로 넣어봐서 어떻게 바뀌나 밤새우면서 연구했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회삿돈을 가지고 '뒤통수를 친' 직원 때문에 사업을 접어야 했지만, 언제든 다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동안에도 하루의 일정 시간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하며, 때로는 가르치는 일에 썼다. 유상석은 배달대행 라이더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2월부터는 동남권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또한 그에게는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는 창의적 활동의 하나다.
"현장 노동자의 경험을 갖고 이런 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잖아요. 서울시나 정부에 가서 이야기할 때, 나와 동료들의 경험을 그대로 이야기해줘요. 안 한 사람은 모르니까요. 배달 시장 계보를 그리고 설명하면, 기자나 연구자가 되게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산업구조가 아주 복잡하죠. 그리고 움직여요. 빠르게 변해요."
안전배달료가 터무니없다고요?
일하다 다치거나 죽었을 때, 누구라도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하는 일이다. 유상석은 그 출발점에 '안전배달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들은 비 오는 날 트라우마가 다 있을 거예요. 그런 날은 타고 싶지 않죠.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나, 비 오는 날 기사들이 안 나오니까 프로모션 금액을 올리는 거거든요. 그래도 '돈 벌러 갑시다'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만하죠. 프로모션 비용 올라서 한 시간에 1만 얼마씩 받다가 2~3만 원씩 벌어보세요. 혹하지. 유튜브 같은데 라이더라고 나와서 월 700, 800씩 번다고 하는 사람들?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걸요. 그렇게 벌려면 교통신호 다 재껴야 해요. 사고를 부추기는 거예요.
일단 안전요금제가 채택되어야 해요.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건당 배달료가 2700원이었어요. 지금 2900원이에요. 9년 동안 200원 올랐다고요. 말이 됩니까? 한 시간에 5개 배달한다고 했을 때 1만 5천원이에요. 거기서 보험료나 오토바이 유지비, 감가상각 빼고 이러면 위험수당도 제대로 받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빨리 달릴 수밖에 없어요."
라이더 모집이 필요한 플랫폼들이 '고액 수입'이라는 신기루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대다수 라이더는 장시간 노동을 통해 최저임금 정도를 벌고 있을 뿐이다. 라이더들이 안전배달료를 통해 주장하는 건 생활이 가능한 임금이다. 배달료가 4000원 선이 되면, 무리하게 달리지 않아도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을 넘어선 금액이 가능하다.
"우리가 배달료를 올려 달라고 하면, 플랫폼사는 이렇게 말해요. 자영업자가 다 들고일어난다고. 그럼 따져보자고요. 저는 창업을 오래 가르쳐서 대기업 들어간 사람이니까 당연히 창업이 어떤 논리인지 알아요. 배달대행플랫폼이 없을 때는 업주들이 직접 오토바이 사고, 보험 들고, 기름 넣고, 알바비 주고, 밥 먹여 주고 고정비를 지출해야 해요. 이걸 없애고 배달 건당 수수료 낼 때와 비교하면 어떤 게 더 경제적으로 이득이겠어요?
지금 경기가 어려워서 매출이 떨어진다고 해요. 그럼 매출이 높았을 때보다 매출 떨어졌을 때 고정경비가 들어가는 게 더 리스크가 큰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그 고정경비가 없잖아요. 그럼 당연히 셈법을 달리해야죠. 왜 라이더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만 하지, 그런 셈법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하나요? 플랫폼사들이 가맹점들과 배달수수료 계약을 할 때, 기사들에 대한 고려는 원가 계산에서 빠져요. 이 2900원은 누가 책정 했냐고요. 기사들에게 동의하냐고 물어본 적도 없어요."
배달 기사는,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