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0시 기준 '코로나 1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며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최다를 기록한 가운데, 오는 1월 5일부터 4박5일간 진행될 제10회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오탈제'가 논란이다.
오탈제란 로스쿨 졸업시부터 5년 내에 5회가 지나면 변호사시험 응시기회가 박탈하는 제도다. 군 복무 외 임신·출산이나 암 같은 중병치료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변호사시험법 제7조) 바로 이 '예외 없음'이 코로나 상황과 맞물리며 특히 응시자들 사이에서 오탈제에 관한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법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변호사시험 응시자 유의사항>에서 '코로나19 확진확자는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이에 이번이 5회째 마지막 시험 응시라는 A씨는 "남은 기간 조심하겠지만 운이 나빠 확진자가 될까 두렵다"며 "만일 그렇게 시험장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자동 오탈자'가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5회째 응시자인 B씨는, "코로나 징후가 있대도 오탈을 피하려면 5일간 해열제를 먹고 시험을 감행해야 하나 싶다. 그러면 내가 시험 중 쓰러질 수도 있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감염될 수도 있지 않는데..."라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5회째 응시자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번이 세 번째 시험이라는 C씨는, "기간과 횟수의 제한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중 한 번이 코로나 때문에 날아간다면 내 책임 아닌 이유로 오탈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로스쿨 졸업예정자인 D씨는 "미국에선 국가적 재난상황인 만큼 변호사시험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른 방식은 아예 고려도 안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코로나 재난 상황으로 실무가 중요한 로스쿨의 수업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등 교육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 피해를 로스쿨생들이 오롯이 감수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국에 5일간 전국에서 수백 명이 좁은 교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시험을 치르는 것은 문제라며 "변호사시험을 연기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전 세계적 재난 코로나19 외면하는 오탈제도
지난 11월 26일 헌법재판소로부터 오탈제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반대의견들(2018헌마733 등)을 받아낸 김정환 변호사는 일련의 상황에 관해 "중대한 질병 등에 대한 응시제한 예외도 인정되지 않는 현행 오탈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코로나 증세를 보임에도 인생에 단 한 번 남은 시험 기회를 위해 만일 응시하는 수험생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탓을 넘어 제도의 탓"인 만큼 오탈제는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탈제에 관한 다른 헌법소원들을 대리한 류하경 변호사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 역시, "코로나에 걸리면 1년 1회 기회가 그냥 사라진다. 이번에 5회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면 그 즉시 바로 오탈이 되는 거다. 이런 결과가 명약관화하다고 헌법소원 사건에서 그렇게 주장했는데 요지부동이었던 헌법재판소와 국회가 너무 원망스럽다"며 분노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개인의 재난도, 삶의 변화도 외면하는 오탈제도
오탈제는 코로나 같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삶의 변화에 관해서도 오탈제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암치료나 희귀병치료를 미뤄가면서 5년 안에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삶의 변화를 겪은 이들도 같은 입장이다.
지난 11월 26일 오탈제 합헌결정을 받은 헌법소원의 청구인인 E씨와 F씨. 둘 모두 졸업 후 엄마가 되며 실제 변호사시험장엔 두 번밖에 들어가지 못한 채 변호사시험에서 '영원히' 배제되는 오탈자가 됐다. E씨는 임신 36주차에 시험장에 들어가 시험을 치다가도 통증이 오면 책상 옆 간이침대에 몸을 누워가며 버텨야 했다. F씨는 갓난아이 육아와 변호사시험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공부할 책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 날들이 많았다. 또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마지막 변호사시험 때는 시험 3주 전에도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지켜야 했다.
이들은 모두 '엄마됨'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E씨는 출산예정일에 시험장에 있어야 했지만 "무리해서 시험에 붙었대도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나는 잘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아이를 지켰으니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 인간의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을 변호사시험은 대체 왜 인정하지 않느냐"며 법무부와 법조계를 향해 의문을 던진다. 엄마와 변호사자격이 양자택일이 되는 현 상황은 납득불가란 얘기다.
E씨와 F씨의 사연들이 구체적으로 담긴 위 헌법소원((2018헌마733 등)에서 4명의 재판관들은 적어도 임신·출산, 중병 치료 등을 예외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현 오탈제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변호사시험 준비생이 불측의 중한 사고, 질병 또는 그로 인해 일시적, 영구적 장애를 입는 경우나 임신, 출산을 하는 경우 등에는 정상적인 변호사시험 준비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군복무와 임신 출산 등과의 차별은 '평등권 침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소수의견일 뿐 언급했듯 해당 헌법소원에서 이들 청구인들은 오탈제 합헌결정을 받아야 했다.
오탈제에 '근본 대안' 촉구하는 목소리들
그런데 사회적, 개인적 재난이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만이 오탈제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경수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대표에 따르면 오탈제는 그 자체로 로스쿨 졸업생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오탈제는 기득권 법조인들의 이익을 위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즉 신규변호사 배출 수를 줄이려는 꼼수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위헌적 제도다. 이로써 현재 891명에 이르는 수많은 오탈자들의 직업의 자유가 완전히 침해되고 있는 만큼, 오탈제는 지금 당장 폐지되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의사시험 등 관련 전문교육기관 졸업생들이 치르는 전문직시험에서 '응시 기간과 횟수의 제한'이 있는 경우는 변호사시험이 유일하다. 미국에서는 로스쿨생들만 치르는 변호사시험 기회에 일정 제한이 있는 주가 있기도 하나 그 경우에도 재교육 이수시 추가 응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독일에서는 법대생만 치르는 사법시험이 소위 '2탈제'이긴 하지만, 이는 기간 아닌 횟수의 제한일 뿐이므로 임신 등의 사유가 있으면 시험을 미룰 수 있다.
오탈제의 위헌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대리해온 김정환 변호사와 류하경 변호사는 오는 제10회 변호사시험 이후에는 뜻을 함께 하는 변호사들과 공동대리인단을 조직해 보다 적극적으로 제도의 피해자들과 헌법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결국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로서 소극적 입장에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만큼 결국 사람을 살리는 적극적 제도 개선은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지난 11일 김남국 의원은 '임신 기간 및 출산 후 3개월' 동안, 이재정 의원은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한 1년' 동안 예외를 허용하는 오탈제 개정안을 각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임신 출산을 진정으로 고려했다면 소급적용 부칙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더해 김정환 변호사는 "해당 개정안은 중병 치료나 코로나 재난 상황 등에 대한 고려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탈제나 변호사시험 합격률의 인위적 통제 등 근본 문제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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