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와 성동구의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로또분양'은 보수·경제 언론들이 자주 쓰는 용어입니다. '분양을 받은 사람이 시세 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현상을 축약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정부 정책 중 하나인 분양가상한제를 공격하는 용어로 유용하게 활용됐습니다. 로또분양 속에 담긴 속뜻을 명제별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1. 분양가가 낮아서 분양 당첨자들에게 막대한 차익이 예상되면서, 청약 과열 양상을 보인다.
2.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도록 한 분양가상한제가 문제다.
3. 청약 과열로 집값 상승 압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한제를 폐지하고 분양가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물음표가 들어간 세 번째 명제는 조금 이상합니다. 집값 상승이 우려되니 분양가를 높이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분양가를 높이면 주변 집값도 상승 기대감에 덩달아 오릅니다. 부동산 시장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보수·경제 언론들은 이런 류의 기사를 그동안 끊임없이 양산해왔습니다.
"당첨자가 로또에 환호하는 사이 주택 수요 대다수는 공급 부족, 가격 급등 등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중앙일보 9월 2일자)
"분양가상한제가 실효성도 없이 젊은 세대들의 '한탕 심리'를 부추기고 청약과열을 유발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매일경제 11월 5일자)
물론 이들 언론사들이 '분양가를 높여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습니다. 대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 규제는 건설사들이 마음대로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막는 분양가상한제입니다. 부동산학을 전공하는 소위 부동산전문가들의 냉철한 분석도 빠지지 않습니다. 아래는 지난 9월 2일자 <중앙일보>의 "분양가 1억 뛸때 집값 15억 뛴다…'패닉바잉' 부른 '로또분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실제로 인용된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한몫 잡으려는 로또 심리가 주택시장 전반에 과잉 수요를 자극하며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당첨자 이익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적정 이윤을 보장해 공급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당첨자가 과도한 시세차익을 가져가지 않도록 분양제도를 손질할 때가 됐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는 지난 7월부터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되는 제도입니다. 건설사나 시행사 등 사업주체가 아파트 건축비를 과도하게 부풀려 책정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당첨자의 이익을 줄이고 과도한 시세차익을 누리지 않게 하려면, 이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 아파트 분양가를 시세와 비슷한 수준에 책정한다면, '로또분양'도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요즘 서울 아파트 가격은 10억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웬만한 직장인들이 평생 일해도 갚지 못할 돈입니다. 10억원이 넘는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내버려두면 그 아파트를 감당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그 돈은 누가 가져가게 될까요?
로또분양 피하려고 분양가상한제 폐지? 그 이익은 누가 가져갈까
당연히 그 돈은 아파트 지어서 파는 건설사와 재건축조합이 가져갑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된 지난 2015년부터 건설사들의 주택 부문 영업이익은 급증했습니다.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 등 주요 건설사들이 최근까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던 이유도 주택사업 실적 호조에 있습니다. 분양을 해서 수익을 얻는 재건축 사업 역시 기대수익이 커지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렇게 2015~2017년 아파트 공급이 늘어서 집값이 잡혔나요? 오히려 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015년의 일이 쳇바퀴처럼 반복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가상한제가 로또분양의 원인이라는 기사는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공공(SH공사)이 분양한 위례신도시 아파트를 소개하는 기사에도 '로또'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이 아파트들의 분양가는 3.3㎡당 1900만원대 수준인데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니 로또라는 얘기입니다. 조성원가에 비해 굉장히 비싸게 책정됐다는 시민단체(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주장은 이들 언론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주택개발 정책 등을 통해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시세 상승에 편승해 높은 분양가를 받는 것은 국가나 지자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는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해서 주거 불안을 해소해야 합니다. 여기에 분양자가 수혜를 독점하는 '로또분양'도 막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지난 9일, 집값을 잡으면서 로또분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주택법 개정안이 그 주인공입니다. '반값아파트'라고 불리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하고, 입주자가 이를 되팔 때 반드시 공공(LH)에 팔도록 명시했습니다. 건물소유권을 민간에 넘기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자가 민간 시장에 되팔아 차액을 챙기는 '로또분양'이 원천 차단됩니다. LH가 매입한 토지임대부는 집이 필요한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토지임대부는 건물만 분양하고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는 형태라 분양가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의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이 갖춰진 것입니다.
공공환매 + 토지임대부 주택의 힘
혹자는 민간 시장에 팔지 못하게 제한한 규정을 두고 '공산주의'라고 비판하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라는 비판의 속내는 '국가가 조성한 땅도 민간 시장에 팔도록 허용하라'는 겁니다.
지금처럼 투기꾼이 판치는 주택시장에서 국가의 땅까지 투기판에 내놓고 온 나라를 투기 천국을 만들어야 옳은 걸까요? 그것은 국가, 공공의 역할이 아닙니다. 공공의 토지를 시장 거래로 내놓는 순간, 돈 많은 투기꾼들의 먹잇감만 될 뿐입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투기꾼들의 욕망은 만족을 모릅니다.
토지임대부 주택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자 건설업계에선 "사업 기회가 줄어든다"고 우려합니다. '로또분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면 분양가상한제 폐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토지임대부 주택 공공환매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이 나오니 적잖이 당황했을 법도 합니다.
이번 주택법 개정안처럼 토지임대부 주택은 물론 공공이 보유한 토지와 주택은 공공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담 가능한 가격에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 옳습니다. 공공이 부담가능한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 그것이 로또분양을 막고 나아가 집값 안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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