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작물 재배식물 재배에 적절한 온도를 맞춘 비닐하우스 내 작업 모습
고기복
충분히 예견된 사고였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동안 비닐하우스,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등으로 만든 임시가옥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숙소에서 화재와 사망 사고가 숱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력 담당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고용주들이 화재와 폭염과 한파 등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관리 감독할 책임을 방기했습니다. 지자체 역시 이주노동자 안전에 무관심했습니다.
속헹씨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자, 고용노동부는 23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농축산업 외국인근로자의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늦어도 한참 늦은 늑장 대응이긴 하나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안전과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결정 사항을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속헹씨 사망 사건은 사업주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숙소 문제에 안이하게 대처했던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의 관리 소홀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탄 전야에 '이주노동자 권익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비닐하우스뿐 아니라 농촌의 이주노동자 임시숙소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착수하겠다고 밝힌 부분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 지사는 실태조사를 토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의 사망 원인을 간경화라고 단정 짓고 매듭지으려고 하는 경찰과 달리 이 지사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있습니다.
"부검결과는 건강악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제대로 된 진료 기회도, 몸을 회복할 공간도 없었기에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모두 존귀한 존재입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아야 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외치던 이주인권단체들의 주장을 공허하게 만들었던 고용노동부의 늑장 대응이 한 사람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원망스럽습니다. 이주노동자 동사 논란은 사실 기숙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외국인력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9일 새벽 혜화동 로터리 다리 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중국동포 고 김원섭씨의 죽음이 떠오릅니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던 농성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119에 한 번, 112에 열세 번이나 전화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던 김원섭씨와 속헹씨의 죽음은 제도적 결함과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구조적 살인이었기에 미안함을 더하게 합니다.
속헹씨 죽음을 애도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멀리서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알았으면 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6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공유하기
비닐하우스서 죽은 서른 살 이주노동자, 막을 수 있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