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축전곡을 의뢰받아 완성했다.
김종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죄'에다 안익태의 친일 행위를, '사람' 자리엔 애국가를 대입하면, 정확히 김경준 시민기자님의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익태와 애국가를 따로 떼어 생각하자는 그의 주장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관련 기사 :
안익태가 친일파니 애국가 바꾸자? 다르게 생각합니다,
http://omn.kr/1r87v)
부디 말꼬리 잡는다고 꾸짖지 않길 바란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불가피한 까닭이다. 여러 사료와 연구 논문을 근거로 삼은 글일지라도, 해석과 주장에는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반박 글이 그의 주장에 견줘 논거가 빈약하다고 책잡힐 까닭은 없다는 이야기다.
우선, 그는 글 첫머리에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적이 밝혀진다면 서훈 박탈 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밝혀진다면'이라는 가정부터 생뚱맞다.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다. 알다시피, 안익태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뭘 더 밝혀야 하나. 온 국민의 일치된 합의를 요구하는 거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파에 가닿는 지금의 기득권 세력이 온존한 마당에 애초 가당찮은 요구다. 여전히 친일 청산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을 부라리고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애국가는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백 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그러하기에 바꾸자는 것이다. 차라리 저작권 문제로 눙치고 끝낼 수 있다면 좋겠다. 문제는 애국가와 안익태를 분리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교사와 수업을, 판사와 판결을 분리할 수 없듯이 말이다.
애국가와 안익태는 분리할 수 없다
예술가는 그가 그리고 쓰고 만든 작품으로 재능을 평가받고 성향이 규정된다. 우리가 안익태를 알고 있는 건 그가 작곡한 애국가 덕분이다. 애국가가 없었다면 안익태도 없었다. 예술가로서 안익태와 예술 작품으로서 애국가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한몸이다.
친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을 발표했다면, 그 작가는 의심의 여지 없는 친일파다. 역으로, 친일 행위를 일삼은 자가 그리고 쓰고 만든 거라면 친일 작품으로 분류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친일파의 애국가'는 마치 '동그란 네모'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하여 지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친일 예술가들의 작품이 모조리 삭제됐다. 문학과 음악, 미술과 종교 등 모든 장르가 총망라됐다. 이광수, 최남선, 모윤숙, 노천명, 현제명, 홍난파, 김은호, 이종욱, 최린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거물급 인사의 작품들을 더는 찾아볼 수 없다.
김경준의 논리대로라면, 그들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예컨대, 최남선이 지은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홍난파의 '봉선화'를 들으면 우리 민족의 한과 울분에 가슴을 저미게 된다. 그들 역시 '민중과 함께했던 작품'이었다.
애국가를 보전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애국가를 국가의 공식 국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일 수는 없다.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주는 유산도 있고, 오욕과 질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산도 있다. 애국가는 차라리 후자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993년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한다고 했을 때 반대편에 섰다.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보전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고 여겨서다. 그러나 그곳을 국회나 정부 청사로 쓰는 건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로 용납될 수 없다.
한편, 김경준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을 허가한 곡임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고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인정한 만큼 애국가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항일 전선의 광복군들도 불렀다며 사료를 내보였다.
일제강점기엔 우리 민족이 독립의 의지를 다지며 불렀고, 해방 후에도 우리 민족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항상 불렀던 노래였다고 상찬했다. 6.25 전쟁 때도, 5.18 민주화운동 때도, 2002 월드컵 때도 소리높여 불렀다는 것이다. 곧, 우리 민족과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노래라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고, 지금도 들으면 장중한 곡조에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다. 올림픽의 시상식에서 태극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누구든 애국자로 만드는 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외운 4절까지의 가사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기억하고 있다.
이 또한 애국가를 교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일 순 없다. 애국가가 유명한 건, 그 전부터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줄곧 불려온 노래다. 식민 지배를 받았고, 오랜 군사독재를 겪었으며, 집단주의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국가(國歌)의 위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불린 지 이미 한 세기 가까이 지났고 모두에게 익숙한 곡이니 그대로 쓰자는 주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럴 거면, 역사는 왜 배우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애국가를 교체해야 하는 이유는 친일 행위에 대해 역사가 기필코 응징한다는 교훈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요인들, 안익태 친일 알았다면 불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