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큰사진보기 ▲봉오골 반일 전적비봉오골 반일 전적비박도 봉오동전투는 다음으로 전개될 청산리대첩의 예고편이었다. 봉오동전투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 독립군부대는 사기충전하고 용기백배하여 본격적인 항일전쟁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을미의병 이래, 국치 이후 봉오동전투는 우리 독립군이 통쾌하게 일본군을 섬멸한 최초의 전승이다. 큰사진보기 ▲봉오동전적지로 지금은 저수지로 변했다. 저수지 상류가 하촌이다.봉오동전적지로 지금은 저수지로 변했다. 저수지 상류가 하촌이다.박도 봉오동의 패전이 일제에게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는 「봉오동전투 상보(詳報)」라는 일본군의 보고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봉오동 남방 약 3천 5백미터 높이 503(미터) 고지, 북방 약 천미터의 능선, 동방 약 천미터의 고지 능선, 상봉오동에서 높이 445미터 중턱에 통하는 정선로 북측 고지, 상봉오동 동북방 약 2천미터 높이 504 남방 고지선 및 그 서쪽 고지능선, 상봉오동 서쪽 고지로부터 사격을 받았으나 적(독립군)은 교묘히 지물(地物)을 이용하여 그 위치가 분명치 않고 탄환은 사면에서 날아와 전황불리의 상태에 빠졌다.(…) 공격 전진중 일등졸(卒) 호라이는… 복부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고… 소대장으로부터 후퇴 명령이 있음에도 전투를 계속하기에 이르러 끝내 절명하고 왼쪽 방면에서 나온 나까니시, 소토야마 양 소대와 연락이 불충분하여 피아(독립군과 일본군)의 식별이 곤란하였으나 나팔을 불어 왼쪽 고지 및 골짜기를 전진중인 양 소대와 연락을 취하고, 양쪽 고지에 척후를 보내어 주력은(패퇴로인) 비파동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주석 1) ▲봉오동 전적지 들머리에 '봉오골 반일전적지' 기념비.박도 봉오동 전투 현장의 입구(봉오 저수지 관리사무소 근처)에는 1989년 1월 18일 도문시 인민정부에서 세운 〈봉오동 반일전적비〉가 그날의 대첩을 증언하고 있다. 전적비는 길이 140cm, 너비 96cm, 높이 150cm의 화강암 2층 기단 위에 올려 놓았다. 부지 면적은 가로 720cm, 새로 350cm 이다. 좌우에 도문시의 문화재임을 알리는 현판을 중문과 한글로 각각 부착해 놓았다. (주석 2)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제는 독립군의 동향을 예의 추적하면서 또 다른 대규모의 전투 준비를 신속히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큰사진보기 ▲봉오골 반일 전적지 기념비. 기념비에는 ‘봉오골’, 안내석에는 ‘봉오동’이라 적고 있어 처음엔 헷갈렸습니다. 의미는 같지만... 조종안 아(我) 추격대의 철수 후 독립군의 각단은 매우 민속하게 아병(我兵)과의 교전을 선전하고 있다. 도독부는『군정보신보(軍情報新報)』호외를 발행하고, 국민회도 인쇄물로서 독립군이 일병과의 교전 결과 적 150명을 죽이고 적을 선지(鮮地)로 격퇴하여 대승을 얻었다고 고취하며 독립 기세의 흥진을 착모하고 있다. 독립군 각 단체는 계속적인 교전을 예상하고 군사 행동에 대한 각단 연락의 방법 및 식량ㆍ장정 모집 등의 재전투 준비를 신속히 행하고 있는 것 같고, 장정들이 속속 독립군에 들어가고 있다. 일ㆍ지(일중) 합의에 따라 교전지 피해 조사를 위하여 지나 군대 보호하에 아 경관 수명을 2~3일 내에 피해지를 시찰시키려 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앞서 교전한 적은 두만강 대안 독립군의 전부인 것 같으며, 아병의 철퇴 후에 독립군은 강안(江岸) 지대의 요점에 정찰대를 파견하여 대안 정황을 정찰중이다. (주석 3) 주석 1> 박영석, 『재만한인 독립운동사연구』, 162쪽, 일조각, 1988. 2> 김주용 「홍범도장군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 『여천홍범도장군 순국 69주기 학술회의』, 자료집, 2012. 3> 「대정(大正) 9년 6월 15ㆍ16일 조선군사령관 제45호 전보」, 『현대사자료』28, 58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최운산 #최운산장군평전 #무장독립투사_최운산장군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추천3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춘추의열, 의열사의 존재 구독하기 연재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 다음글24화일제의 중국군 동원 진압책략 막아내 현재글23화청산리대첩의 예고편 이전글22화일본군 500여 명 살상한 대첩 추천 연재 윤찬영의 익산 블루스 "꽝" 소리 나더니 도시 쑥대밭... 취재기자들도 넋이 나갔다 행담도,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꽃보다 소년 5분 지각에 '대외비' 견학 버스는 떠났고 아이는 울었다 백화골 팜스테이 ‘한국이 좋아서’ 한식에 빠진 미국 청년, 이걸 다 만들어봤다고? SNS 인기콘텐츠 나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유서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광화문 나온 이재명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오마이포토]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AD AD AD 인기기사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청산리대첩의 예고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25화'혈서동맹' 맹서하며 재기 다짐 24화일제의 중국군 동원 진압책략 막아내 23화청산리대첩의 예고편 22화일본군 500여 명 살상한 대첩 21화하늘도 도운 봉오동대첩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