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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 눈물겨운 '이재용 구하기'

[민언련 신문 모니터 보고서] '삼성 기관지' 아닌 '경제 전문지'로 거듭나야

등록 2021.01.26 10:34수정 2021.01.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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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파기환송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회삿돈을 뇌물로 제공한 혐의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한국경제>는 다음날 1월 19일 온라인판에 '[단독] "이재용, 코로나 백신 확보 위해 출국 앞두고 있었다"'(남정민 기자)를 실었고, 하루 뒤 지면에 같은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동아일보> '이재용, 백신 확보 위해 UAE 갈 예정이었다'(1월 20일 김현수‧김지현‧서동일 기자)도 비슷한 내용을 1면에 배치했습니다. 이 부회장이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그러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SNS에 "이런 기사 눈물겹습니다", "삼성은 죄를 짓고도 감옥 가면 안 됩니까?"라며 한국경제 기사를 비판했고, 남정민 기자는 <미디어오늘> '이재용 백신 확보 출국 준비 보도 기자 "팩트만 전달한 기사"'(1월 21일 조현호 기자)에 "팩트만 전달한 기사"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단순 사실관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경제>가 해당 기사를 이용한 방식입니다.

'이재용 입장 대변'한 기사 옆에 나란히 배치

사실만 전달했다는 남정민 기자의 입장은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경제>의 지면 배치 때문입니다. 해당 기사가 배치된 1월 20일 자 <한국경제> 2면에는 '"한국만 CEO에 과도한 형사책임…이재용 구속 유감"'(황정수‧이수빈 기자), '"세계시장 급변하는데…삼성은 방향타 잃어"'(선한결‧정영효‧강현우 기자)가 함께 실렸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법정구속을 두고 "한국이 최고경영자에게 얼마나 과도한 형사책임을 묻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입장을 소개하거나 "외신들은 삼성이 혁신 기회를 놓쳐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전체적으로 타격받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주장한 기사입니다. 더 나아가 이 부회장 구속이 부당하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 옆에 편향된 기사를 배치한 한국경제(1/20)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 옆에 편향된 기사를 배치한 한국경제(1/20)한국경제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 기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은 잘못됐고, 국가경제를 망칠 것'이라는 논조를 확연히 드러낸 기사 옆에 나란히 실렸습니다. 신문의 지면 배치와 편집은 기사내용 못지않게 의제설정 및 메시지 부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기사 사이에 배치된 '백신 특사 무산'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법부의 부당한 삼성 최고경영자 구속이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 사이에서 '구속으로 인해 백신 특사조차 수행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남정민 기자는 "팩트만 전달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해당 기사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 비판', '삼성 입장 옹호'로 보이기 충분했습니다.


의도적이면서 부정확한 보도

게다가 <한국경제> 보도는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만 전달했다는 남정민 기자의 기사는 "법조계 및 산업계"라는 익명 취재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반면 질병관리청 고재영 대변인은 <오마이뉴스> '이재용 백신 확보 UAE출장? 질병청 "논의한 적 없다"'(1월 20일 박정훈 기자)에서 "(이 부회장의) 해외출장은 질병청과 논의한 적이 없는 사안이다. 보도의 사실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다"며 방역당국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설'은 익명의 관계자발 정보일 뿐 방역당국에 확인한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지면에 배치된 다른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경제>는 주요 외신도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스> '한국언론 이재용 구속에 외신도 우려, 사실일까'(1월 22일 송창한 기자)에 따르면 외신들은 "국내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가 삼성이 정치권력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범죄에 연루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BBC), "월요일의 판결은 과거 한국의 재계 인사들에게 보여준 전형적인 관용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로이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심지어 AP통신은 "삼성은 이 부회장이 2017과 2018년 감옥에서 보낸 기간 동안 별 문제가 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며 <한국경제>와 정반대 주장을 펼쳤습니다.

<한국경제>는 "한국 CEO들이 경쟁국보다 사법 리스크에 많이 직면해 있어 경영활동에 차질을 빚는다", "격동의 시기를 맞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삼성으로선 '기회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편향된 주장을 내놨습니다. 한국기업 수출을 통해 이익을 올리는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삼성에 근무한 윤부근 삼성전자 고문 등 삼성 친화적인 취재원을 통해 만들어진 기사입니다. 결국 <한국경제>의 이번 보도는 삼성의 시각으로 이재용 부회장 판결을 바라본 결과에 가까웠습니다.

'삼성 기관지' 노릇하는 언론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을 비롯해 한국 경제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검증됐습니다. 앞서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 부회장이 구속된 동안 삼성전자는 주가가 26.5% 상승해 코스피 상승률 19.8%를 웃돌았습니다. 그때도 수많은 언론이 삼성 위기를 우려했으나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남정민 기자의 '이재용 백신 특사 무산설'이 비판받은 이유도 삼성 걱정에 발 벗고 나선 언론의 실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결정을 비판하고, 삼성 입장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보도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재벌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국경제가 경제 전문지라면 부당한 방법으로 정치권과 유착한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특정 기업 입장만 대변하거나 재벌이 구속되면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위험을 과장해왔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1월 20일 한국경제 지면 보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에도 실립니다.
#이재용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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