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간절함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창구 앞에서 한 구직자가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을 기다리고 있다. 2021.2.3
연합뉴스
창조하는 시대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진 이후, 각국의 정부는 서로 다른 대응책을 내세웠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기업의 노동 비용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기업에 고용을 유지하게 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족한 임금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구체적인 모습이다.
영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지원을 시작했고, 임시 유급 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대책도 시행한 바 있다. 비록 이후의 재난지원금이 선별로 지급되기는 했지만, 한국은 소득 심사 없이 모든 가구에 1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모든 정책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따위의 오래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말도 안 되는 정책일 수 있다. 열심히 일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수당을 지급하는 실업급여에 비교해 보더라도 말도 안 되는 정책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결국 "먹을 수 없으면 일을 할 수도 없다" 혹은 "일하지 못하더라도 먹어야 산다"라는 정반대의 사실 두 가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데 근면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준병 의원과 <중앙일보>의 기사는 지나도 너무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근면을 증명해야 하는 일은 늘 편파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난할수록 근면을 증명해 보여야 하지만, 부자는 게을러도 존경을 받는다. 가진 것이 없는 만큼 많은 것을 증명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누구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자, 누구의 자격도 따지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멕시코와 함께 노동시간 1위를 다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게으르다고 호통치는 우스운 광경은 이제 끝을 내고,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잡한 자격을 따지고 증명을 요구하는 실업급여의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 노동과 가난을 중심으로 한 복지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복지를 고민할 때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노동과 장애, 증명 없이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앞으로도 엎치락뒤치락하며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를 번갈아가며 선택하겠지만, 결국 후자를 선택할 것을 믿는다. 그것이 유일하게 '잃어버린 시대'가 무엇인가를 '되찾는 시대'로 나아갈 방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여가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중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꿈꿔왔던 일을 해볼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든 어떤 삶을 선택했든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같은 국가 보조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필요하다.
되찾는 시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나갈 것들을 보고 싶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 창조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우리는 분명 되찾는 것을 넘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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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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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중독자 1만명 시대? 윤준병 의원은 모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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