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첫 법관 탄핵소추, 의결서 헌재 제출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별관에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고 있다. 2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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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잘못에도... 단죄되지 않는 신
판사는 신이 아니지만, 신과 같은 존재였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조인들의 끈끈한 관계가 하나의 굳건한 체제라며 이들을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해야 임용될 수 있고, 헌법에 따라 신분은 물론 재판의 독립까지 보장받는 판사들은 신성가족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해왔다. '사법 신뢰'라는 말로 국민들이 보내는 존중 역시 그들의 권위를 세워줬다.
하지만 판사는 신이 아니다. 1982년 유태흥 당시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 법관을 희망한 장애인 4명을 전원 탈락시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이듬해 임용했다. 그는 또 '투철한 국가관에 의한 판결'을 강조하며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조수현·박시환 판사를 '전보'로 보복했다. 이 일을 비판한 서태영 판사도 정기 인사 다음날 새 근무지인 서울민사지법에서 부산지법 울산지원으로 보내버렸다.
신영철 대법관도 있다. 그는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보수성향 판사에게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몰아주려고 했다. 또 일선 판사들에게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야간집회 금지조항 위헌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집회 참가자의 보석을 신중히 하라'고 전화하는 등 압력을 넣었다. 당시 대법원은 진상조사에 들어갔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와 신영철 대법관의 사과로 흐지부지됐다.
유태흥 대법원장 때도, 신영철 대법관 때도 사람들은 판사가 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국회가 움직였다. 1985년 10월 18일 야당 신한민주당을 중심으로 의원 102명이 헌정 사상 최초의 공직자 탄핵 소추안,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 소추에 관한 결의안'을 냈다. 하지만 10월 21일 찬성 95표, 반대 146표로 부결됐다.
2009년 11월 6일, 이번에도 야당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힘을 합쳐 의원 106명 이름으로 '대법관(신영철)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당 한나라당이 끝내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아서 표결에 붙이지도 못한 채, 시한 만료(본회의 보고 후 24~72시간 이내)로 자동 폐기됐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렇게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에야 2021년 2월 4일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 소추권을 발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