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은 좀 달랐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JTBC
그에게서 '스타의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이승윤은 좀 달랐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특히 김이나 심사위원이 "본인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인정을 받아주시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다"는 말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엔터계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그리고 인디에서 오래 활동해온 그의 배경을 짐작해 볼 때 여러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서태지, 국카스텐이 오르내리는 심사평을 듣는 사람이 보이는 이런 반응은 그의 음악세계 마냥 낯설었다.
그는 이 방송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있어서 칭찬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내 깜냥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상으로 욕심부리지 말아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말에 항상 거리감이 있었다. 조언을 듣고 어쩌면 내 그릇이 조금 더 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 근래 본 가수 중 가장 신선한 물음을 던졌던 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다. 평소에도 끼가 넘치고 장난기 많을 것 같은 매력적인 사람이 이런 반응이니까 신선하다. 이 사람 뭐지.
그런데 그래서 마음에 든다. 닮은 거라고는 애매함, 석 자뿐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다른 의미로 그의 생각과 철학이 반짝반짝하다. 그의 모호한 음악세계가 나와 같은 무수한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지점이 아닐까.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가수 이승윤
애매함, 이 단어는 어감부터가 잔인하기에, 회색지대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 분명하지 않고 꺼름칙한 느낌.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계륵같은 말. 애매함이란 뭘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애매하게 잘난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꽤 애매한 사람이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공부는 과목의 구애 없이 웬만큼 했으나 딱히 좋아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그냥저냥. 이 길이 맞다고 해서 따라가기는 하는데 다른 길은 없나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전형적인 실력은 없으면서 어쩌다가 다른 길을 간 사람이 잘 되면 배 아파하는 작은 그릇이 바로 나다. 잘 봐주면 평균 이상, 냉정하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 제너럴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아주 짧게나마 눈이 반짝했던 것도 같긴 한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모호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은 보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당히 모범적이면서 집단에서 튀지 않을 수 있는 변신술은 어느 순간부터 내 본연의 색이 무엇인지 잊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눈칫밥으로 내 위치를 가늠하며 내가 여기 서도 되는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 의심하는 삶. 나로 오롯하게 서 있기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내게 맞는 옷을 입기까지가 얼마나 험난한 사회인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이 보석이 되기보다 빛이 꺼진 돌멩이가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이곳에서.
그런 면에서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30호에게, 이승윤에게, 호감이 간다. 그가 어느 때는 담담하게 어느 때는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 그가 음악을 하며 느꼈을 의심과 외로움, 우울이 고스란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고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은 예술인에게는 무엇보다 가혹한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질감이다. 특히 이를 본인이 느끼고 있다면 그 자체가 상처 입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싱어게인>에서 음악을 길을 먼저 간 사람들에게 '너의 그 애매함이 모든 영역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너의 장점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극찬을 들으면서도 희열보다는 의심과 당황이 공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 예술가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길 바란다고 응원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감정을 조각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내 모양을 잠시나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이 쓰다. 하지만 위로가 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나도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느 순간 나도 나의 애매함에 볕이 들기를 바란다. 그러면 비로소 내 존재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더이상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반짝반짝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자신감있게 음악 생활하길 응원한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30호' 가수에게 배가 아프다던 그, 그의 바람대로 이승윤으로서의 음악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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