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장릉의 풍경인조의 아버지이자 추존왕 원종이 묻혀있는 김포의 유일한 조선왕릉이다.
운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이지만 여기에 묻혀 있는 왕은 살아서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어서 왕이 된 분이다. 일명 추존왕이라고 하는데,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왕릉이다(인조의 왕릉도 명칭이 장릉이다). 협소한 주차장과 입구에 비해 부지가 꽤 넓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잔디밭이 우리를 반겨준다.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존된 산림들은 백성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울창한 숲을 만들었고, 왕에서 시민들로 주인이 바뀌면서 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꽃도 감상하고 호수 주위에서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언덕 너머 봉분과 석장이 위치한 지역만 최후의 보루를 사수하듯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도심에서 언덕만 넘었을 뿐인데 이런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김포시민으론 큰 축복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중년 남성의 탄식 소리가 나의 귀를 자극했다. "시청 뒤편에 이런 공간이 있었네 참 아깝다 아까워..."
아깝다고?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조용히 그 사내의 대화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를 싹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얼마나 좋아 집값도 잘 오르고 시청 뒤편이라 분양도 잘 될 텐데, 무덤 하나 때문에 여기 다 묶였네 쯧쯧..." 순간 낯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우리나라가 아파트 공화국이 된 데에는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조건 개발, 새로 짓는 게 능사인 물질만능, 개발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 덕분에 종로의 피맛골이 사라지고 있으며, 특색 있는 거리들도 점차 획일적인 프랜차이즈로 도배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이곳은 다행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주변 경관이 잘 보전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조선 왕릉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이어가기로 하고, 김포의 현재와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한강신도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다시 한강신도시로 돌아왔다. 한강신도시는 크게 3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에 소개한 구래동과 운양동 장기동으로 서로 독자적인 상권을 형성하면서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른 게 인상 깊었다. 구래동이 호수를 중심으로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게 특징이라면 운양동은 나지막한 모담산을 끼고 타운하우스 촌이 형성되어있다. 최근에 몇몇 연예인들이 여러 방송을 통해 운양동의 타운하우스로 입주한 장면들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타운하우스가 경기도 근교 도시를 중심으로 꽤 유행하는 걸 지켜보면서 층간 소음의 걱정이 없고 자기 집 앞에 마당이 생겨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아파트에 비해 관리 비용이나 노력이 많이 들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불편함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획일된 주거문화를 개선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도시문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이국적인 타운하우스 거리를 지나 어느덧 넓은 건물이 나타나고 모담산 한 자락에 한옥 처마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김포 아트빌리지라고 통칭되는 문화 콤플렉스(complex)로 보면 될듯한데 공연장과 정기적으로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아트센터 전시관과 '샘재 한옥마을'에서 이전한 한옥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아트빌리지는 김포의 문화적 자산을 한 단계 올려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여기 한옥들은 한강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있었는데 전통 자원의 리모델링을 통한 문화자산의 활용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살아 남아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옥이 최근 레트로 열풍과 함께 다시 주목받아 힙한 문화공간으로 살아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은 것, 촌스러운 것, 보존해야만 할 곳으로만 여겨졌다.
전주 한옥마을을 시작으로 서울에 있는 북촌 한옥마을, 익선동, 경주의 황리단 길과 교촌마을까지 SNS의 물결 속에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물론 기성세대의 변질되어가는 한옥마을의 모습에 대한 비판도 있겠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는 이뤄져야 하며, 건물은 누군가가 사용하고 이용해야 빛나는 법이다.
신도시에서 생각지도 못한 한옥을 경험하니 한옥을 짓고 살았던 선조들의 마음으로 돌아가 좀 더 여유 있고 느긋하게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모담산 낮은 산자락 주위로 아파트가 감싸고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안에는 카페와 식당과 함께 문화공방도 함께 있어 여러 가지 체험도 할 수 있고, 한옥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고 하니 달빛 가득한 겨울밤 술잔 한 잔 기울이며 머물고 싶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안 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