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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의 기적:과로자살 사건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118시간 일했던 윈윈의 경우

등록 2021.03.18 17:29수정 2021.03.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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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몸에 적절한 노동 강도가 있다. 그를 넘어서는 과도한 업무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각자의 몸에 적절한 노동 강도가 있다. 그를 넘어서는 과도한 업무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7년 2월 11일, D국제물류기업에서 13년 반 동안 근무해 온 윈윈(가명)은 언제나처럼 혼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회사에서 야근했다. 퇴근 카드를 찍고 대문 밖 통로로 걸어 나가다가 약 1시간가량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120미터 높이의 담을 넘어 11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40살이 채 되기도 전에 그녀의 삶이 그렇게 끝났다. 이것이 건물 CCTV에 기록된 마지막 모습이었다.

윈윈은 2003년 회사에 입사했다. 업무 성과가 뛰어나 비서에서 시작해 승진을 거듭했다. 2013년 고객서비스 부서 책임자 자리에 오르며, 대만의 수출 화물을 차질없이 전 세계의 운송지점에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윈윈은 매일 아침 9시 반에 출근해서 늘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퇴근했다. 금요일만 되면 더욱 극심한 야근지옥이었다. 늘 밤새워 토요일 새벽까지 일해야 했다. 날이 밝은 뒤에야 퇴근한 기록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새 그녀의 삶은 일밖에 남지 않았다. 사교활동이나 여가생활을 할 여력이 없었다. 일에 짓눌렸던 것이다.

가혹한 직업병 인정 기준

윈윈의 부모님은 노동보험국에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다. 노동보험국은 심사 결과에서 '본 사건은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가 없고 연장 근로시간이 인정기준에 미치지 않는다', '당사자의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스스로에 대한 요구가 높으며 연장근로시간도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 회사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줄곧 승진시켰고 고위 책임자는 부담이 무거운 편이 당연하다',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가 없고, 초과 근로, 인력 부족 등 정신적 업무 부하 정도가 中으로 強에 미치지 않아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신청을 반려했다.

쟁의심의를 다시 신청하였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반려되었다. 우리는 이 같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증거를 찾았다. 유가족에게 윈윈의 휴대폰을 넘겨받아 이메일함에서 그녀가 매일 700통이 넘는 메일을 처리해야 했음을 알아냈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는 심지어 1154통에 달하는 업무메일을 받았다. 이를 증거자료로 첨부했고, 노동부에 계속 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반려되었다.

8%의 기적, 희박한 행정소송 판정 결과


유가족은 마지막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누구도 행정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2019년 고등행정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총 3470건의 행정소송에서 승소건은 단지 291건뿐으로 승소율은 겨우 8%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행정법원을 '기각법원'이라고 조롱하듯 말한다.

윈윈의 사건은 약 1년 동안의 심리를 거쳐서 2019년 말 판결이 나왔다. 뜻밖에도 승소였다. 법원은 노동보험국에 대해 종전의 소원 결정을 파기하고 직업병 인정 여부를 다시 심사하라고 판결했다. 법관은 동료의 증언을 인용해 말했다. '고객서비스 부서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이직률이 가장 높은 부서였다. 가장 높았을 때는 이직률이 70%에 달했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장시간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신입사원들이 버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윈윈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신입사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까봐 걱정하면서 늘 자기가 일을 모두 끌어안았다. 그래서 장기간 업무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여기에 일일 업무메일량 등 증거를 더해서 윈윈이 세상을 떠나기 전 1개월 동안의 연장 근로시간이 118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함으로써, 노동보험국이 '구체적인 업무 스트레스 계기가 없다'라고 주장한 결과에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노동보험국은 피고로서 일방 패소한 뒤 윈윈의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사하여 산업재해 인정으로 결과를 뒤집었고 산업재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사실 윈윈의 사건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다. 오늘날 업무 형태가 바뀜에 따라 일터 환경도 점점 복잡해지면서, 업무스트레스 역시 갈수록 과중해진다. 업무스트레스는 최근 널리 알려진 '과로사'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해결이 어려운 신종 직업병 문제가 되었다.

대만은 2009년에 '업무 관련 심리 스트레스 사건으로 인한 정신질환 참고 지침'을 제정하여 정신질환을 정식으로 직업병 보상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2020년 말까지 11년 동안 겨우 47건만이 직업병으로 승인되었다. 그중 자살이 인정된 건은 고작 7건이다. 정신질환의 직업병 승인이 어렵고 심사기관의 태도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승소 결과는 매우 드문 사례였다. 본 판결에서 '직업재해 보상보험급여의 목적은 가해자를 찾아서 그 책임을 부담지우는 데 있지 않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에 노동자 혹은 그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한 것은 그 인과관계의 판단을 비교적 느슨하게 해야 상기한 입법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법원은 노동보험국이 심사 과정 중에 윈윈의 업무스트레스에 대해 임의로 평가하여 신청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역시 행정기관이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인정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계기 삼아 오랜 기간 보수적인 직업병 인정 태도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과로와 업무스트레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높일 수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만의 시민단체 OSHLink의 활동가인 황이링(Huang Yi-Ling)님이 작성하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장향미님이 번역했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3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과로사 #과로자살 #동아시아과로사통신 #OSHLINK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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