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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사태 전까지 농지법은 '없는 법'이고 언론은 관심이 없었다"

농지의혹 폭로 변호사와 농지 취재기자의 국회토론회 발언 현장

등록 2021.03.20 00:47수정 2021.03.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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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3기 신도시 시흥·광명 개발계획이 발표되던 날, 한 시민이 참여연대로 제보를 했다. LH 직원이 농지를 갖고 있다고, 위치는 어디라고 지번까지 특정한 제보였다.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들은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다. 그랬더니 농지 쪼개기가 확인됐다. 3필지를 사서 1필지로 만들고 다시 4필지로 쪼개 신도시 입주권 확보가 가능한 기준(1천제곱미터)을 넘기도록 하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뒤흔든 'LH사태'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열린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그동안의 의혹 폭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조사과정에서 '농지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LH 직원 투기목적 매입토자의 98.6% 농지... 법전에만 있는 농지법 
 
이강훈 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지난 17일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 현장'을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강훈 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지난 17일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 현장'을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영상갈무리

 
"(조사 하면서) 이게 다 농지를 갖고 한건데, 농지가 어떻게 됐길래 이럴까 하는 문제의식으로 참여연대와 민변 변호사들의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했어요. 저희도 그동안 주로 집투기만 강조했는데, 농지전용 등 농지 소유와 관련된 문제가 밑바닥에 깔린 투기의 근원이구나..."

실제로 이번에 폭로된 LH 직원 투기목적 매입토자의 98.6%가 농지였다. 이 변호사는 참여연대가 최근 발표한 시흥시 과림동에 대한 현장조사를 언급하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진 우리 농지관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과림동이라는 동네는 완전히 망가졌더라구요. 농사짓는 곳과 공장이 뒤섞인데다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 적치장이 널려있고 군데군데 펜스가 쳐져있어서 도저히 마을이라고 볼 수 없는 풍경을 보면서 이게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구나. 그냥 놔뒀더니 이 지경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헌법 제121조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시돼있다.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업인이나 농업법인만 농지를 소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전에만 존재할 뿐이다. 2015년 농촌경제연구원 조사결과 전체 농지면적의 56.2%만 농업인 소유로 추정된다. 2018년 현재 전체 농민의 50%가 남에게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가로 분류된다. 식량안보를 위해 엄격하게 보호한다는 농업진흥지역 농지조차 매년 2000ha 이상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농지문제는 남의 일이었을 뿐이다.

"투기꾼들만 농지에 관심을 가졌죠. 수십년간 이 문제(농지)를 연구한 분들은 다 알고 계셨을거라고 생각해요. 수도 없이 농지문제 심각성을 말씀하셨을텐데 사람들이 귓등으로도 안듣고 그러던 차에 마침 우리 국민들이 이번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이강훈 변호사, 농지제도 국회 긴급토론회)

"수십년 묵은 농지전용의 문제....언론사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박유리 한겨레신문 기자 17일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 현장을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박유리 한겨레신문 기자 17일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 현장을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영상갈무리

 또 다른 토론자인 박유리 한겨레신문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2019년 국회의원들의 농지보유현황과 쫒겨나는 농민들의 실태를 5개월에 걸친 탐사보도로 담아내 기자상을 수상한 박 기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왜 자신이 이 토론회에 나왔는지 설명했다.

"5개월간 서울과 농촌을 오가며 나홀로 2526.1km를 다녔습니다. 농지에 관심있는 기자가 많지 않아서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농민들이 제게 해주셨던 많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과연 국민입니까?'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존하는 정말 중요한 존재이고 실제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국민으로서 대우받지 못한다는 박탈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박 기자는 비농업인들의 농지투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자신이 취재했던 20대 국회의원들의 농지보유 사례로 설명했다.

"지금은 21대 국회지만 제가 조사하던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배우자를 포함해 99명, 33%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농지를 소유한 99명 중 53명이 매입을 통해서 농지를 소유했습니다. (농민인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며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하고 농지를 취득한 의원이 배우자 포함 53명, 전체 의원의 17.7%였습니다. 상당한 숫자죠. 20대 국회당시 국회의원 1명당 658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녀는 농지투기가 얼마나 농촌사회에 극악한 영향을 주는지 전국민이 관심갖기를 바란다며 취재중 만난 농민들이 사례를 소개했다.

"농지가 신도시나 골프장 등으로 수용당하고 그 영향으로 농사를 그만두거나 땅을 구할 수 없어 저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했던 농민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농촌형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명명했는데요, 상가임대료가 올라서 먼 곳으로 떠나야했던 것처럼 인천에서 농자짓다가 신도시 주변까지 땅값이 덩달아 올라 평택에서 서산으로, 경기도에서 전라도로 가는 농민이 많았습니다. 농촌공동체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 압박감을 느끼고, 평택에서는 보상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칼부림이 나기도 했습니다."

박 기자는 농지로 인한 비극이 농촌에 너무 많이 일어나지만 여전히 언론에는 소개도 되지 않는 없는 목소리가 되고 있다며 취재일지를 펼쳤다. 자신이 박덕흠 의원 배우자의 농지를 취재할 당시 홍천에서 만난 농민이 해준 이야기를 낭독했다.

"마을에 골프장이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다 쫒겨났지. 읍내에 나가서 사는 사람도 있고 00형은 마을을 떠나 경북 봉화로 갔다가 지금은 횡성 공금면으로 떠났다고 하던데. 그렇게 돌아다니면 돈을 다 까먹지. 골프장을 강제수용할 근거가 80% 동의를 받는 거니까 누구를 8로 만들고 누구를 2로 만드느냐 심리싸움 같은 것이거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 여기도 마을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아."

이렇게 사람들이 떠나고 상처받는 동안 농지는 투기의 재료가 된다. 박 기자는 국회의원(배우자 포함)이 상속받은 농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수십억대로 변모하는지 설명했다.

"김세연 의원과 나경원 의원의 상속농지가 어떻게 다른 도시농부들에게 흘러갔는지 추적하려고 실제로 제가 투기꾼인 것처럼 위장해서 국회의원들로부터 땅을 사들인 가짜농부들에게 접근했었습니다. 김세연 의원의 상속지 경남 양산 하북면 용현리 논 8135제곱미터는 2017년에 8억3천만원에 팔렸습니다. 사들인 사람은 대놓고 농지투자자였는데 저에게 19억이면 2년안에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장용지로 쉽게 전용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나경원 의원 배우자의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6321제곱미터 농지는 2018년 3월에 29억원에 팔렸습니다. 이 농지를 사들인 사람의 집주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0아파트였습니다."

그러나 농지투기는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범죄행위가 아닌 '재테크'처럼 인식되고 있다. 지금도 '농지 재테크'라는 검색어를 치면 주루룩 수많은 정보가 뜬다. 도시민도 농업인으로 인정받으며 수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박 기자는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됨에 있어 언론의 역할도 컸다고 말했다.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청문회에서 농지법 위반 나오면 잘못했다라는 말로 넘어갑니다. 일반 사람도 농지에 대한 문제의식 없었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농사짓는 소수의 일이니까. 그리고 언론의 관심? 전혀 없었고요. 중앙언론사 이런데 아무 관심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농식품부 농지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부서인가?"

농지문제는 인간의 탐욕과 수십년에 걸친 정부의 무관심 무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며 박 기자는 특히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문제에 대한 개혁의지 부재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취재를 하면서 5개월동안 얼마나 수없이 농림부에 전화했겠습니까. 농지과에. 그러나 (한숨)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연 농지과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농민들이 이 농지문제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나 있는지... 저는 사실 단 한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고 나중에는 너무 화가 많이 나서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부서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대목에서 토론회 동석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떨궜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 밖 수 밖에 없는 농정의 현실이라서 였을까. 박유리 기자는 끝까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농민들은 없는 목소리이고 농지법은 없는 법이고 헌법 121조는 없는 항목이고 농지는 있으나마나한 없는 땅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농민들의 목소리가 살아나고 헌법 121조의 가치가 살아나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자리에 임했습니다."
 
농지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 토론회 현장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농지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긴급 토론회 현장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영상갈무리

 
#LH 투기의혹 #농지투기 #농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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