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구로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지역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17일부터 31일까지 서울시내 사업에 1인 이상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진단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차별과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나오자 19일 오후 서울시는 행정명령을 철회했다.
권우성
어떤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느 날, 남편은 친구들로부터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 서울시가 또 한 건 해냈다(발표 이틀 만에 이는 의무 사항에서 권고 사항으로 바뀌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불쾌함을 안고 검사를 마친 뒤다).
우리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국제 커플이다. 아이도 없으니 우리끼리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서울에서는 모든 서비스가 간편하고, 빠르고, 집만 빼면 비교적 저렴하다. 집 주위에 비싸지 않으면서 맛있는 식당이 많아서 외식을 딱히 주저할 일도 없고, 채소나 쌀을 비롯한 식재료는 더 저렴하다.
매일 그룹 운동을 다니는데, 수업의 질도 좋으며 50만 원만 내면 1년간 자유롭게 출입 가능하다. 인터넷 쇼핑은 얼마나 편리하고 또 저렴한가. 많이 벌지 않더라도 사치만 안 하면 두 부부가 살기에 서울은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다.
아이가 있는 국제 커플이 겪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다. 얼마 전, 백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부부의 2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아이가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며 한국 이름도 있고, 국적까지 명확한 한국인임에도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아이만 속해 있는 외국인 반으로 편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외모를 지녀야 한다는 게 2021년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인가 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2인 가족인 우리도 국제 커플, 특히나 외국인 차별적인 문화적·시스템적 환경 때문에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이번 건도 그러하다. 외국인이면 무조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서울시의 처사에는 논리도 부족하지만 과학적 배경 또한 없다. 오직 차별, 인종차별만이 있을 뿐이다. 남편은 아무리 오래 한국에 살아도 한국이란 나라로부터, 한국 정부로부터, 한국인으로부터도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걸 느낀다고 호소한다. 이게 전혀 감정이나 기분 탓이 아님은 옆에서 다양한 사례를 봐온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거의 모든 행정업무에서 남편은 갖고 있을 리 없는 주민등록등본을 요구받고, 외국인의 경우 등록사실증명서라는 별도의 서류가 있긴 하나, 내가 겪은 대부분의 관공서 직원은 이게 확실히 주민등록등본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결국 어떤 행정업무든 여기저기 검색해서 서류를 챙겨가는 방법밖에는 없지만, 혹시나 정보가 틀렸을까봐 전화를 걸어 물어볼 때면, 그때마다 답변이 통일되지 않아 관공서에 가는 순간까지 더 큰 불안감에 휩싸인다. 특히나 작년에 공동명의로 집을 매매하고 셀프 등기를 하면서도 몇 차례나 그런 불안감을 겪었다,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휴대폰 본인인증을 할 때면 풀네임을 입력할 공간이 없어 자꾸만 오류가 난다. 꼭 본명을 전부 입력하라면서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으니 덕분에 은행, 공인인증서, 자주 가는 병원, 인터넷 요금 청구서에 등록된 남편의 이름이 전부 다르다. 이름이 중간에 짤려 나가기도 하고, 이름과 성의 순서가 다르기도 하고... 어쨌거나 대혼란이다. 휴대폰 본인인증에 매번 실패하다보니 남편의 인터넷 쇼핑은 모두 나의 몫이다.
일상 속의 차별
한국말을 잘 하는 남편이 계산대에서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도, 직원 열에 아홉은 카드를 건넨 남편이 아닌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영수증 필요하세요?"라고 물어본다. 음식점에서 남편이 어떤 메뉴에 대해 한국말로 질문해도, 직원은 답변을 하거나 이어지는 질문을 하며 질문자인 남편이 아닌, 나를 바라본다. 이 행동이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가보다.
이쯤 되면 또 독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싫으면 너네 나라로 가!", "너랑 우리가 다르지, 그럼 같냐?"고. 전형적인 인종차별이다.
조그만 일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불만을 호소하는 남편에게 큰일이 아니니 넘어가라고 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사소한 차별이라도 지속적으로 겪으면 결국 쌓여서 커다란 좌절과 분노로 돌아온다.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인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아무래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다스려질만 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작년 6월에야 발의된 이 법에 막상 거대 양당은 적극적이지 않다.
그 와중에 서울시장 유력 후보라는 한 명은 퀴어 축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기에 도심 이외의 장소에서 열려야 한다"는 말을 한다. 대통령 후보도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티비 토론에서 얘기했던 마당에 크게 놀라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행위란 점에서 그 정서적 뿌리는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얼마 전 내가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조선족 동료에게 팀장이 "네 발음이 안 좋아서 너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배치했다, 대표님이 너를 보면 안 좋아하실 거다"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고 한다. 살짝 사투리가 섞인 말씨이긴 하나 고객과 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며 오히려 일을 착실하게 잘 해서 도움이 된 인력인데, 상처를 크게 받았고 이제는 그만둔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 그녀와 함께 수월하게 일해온 여러 직원이 도리어 불편해지게 생겼다. 객관적으로 그녀의 한국어 발음이 내 남편의 그것보다 좀 더 좋은데, 백인인 남편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만 해도 사람들은 "한국어 잘 한다"며 거의 황송해하고, 이 친구가 한국어를 할 때에는 아무리 잘 해봐야 발음이 이상하다며 지적한다.
남편은 내 팀장의 발언을 전해 듣고는 "프랑스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바로 소송할 수 있고, 그 직원이 이기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물론 프랑스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어쨌든 이게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란 공통된 의식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기다리는 서울시장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