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계곡의 얼음벚꽃이 모두 떨어지고 봄 내음이 가득하나 계곡의 얼음은 아랑곳 없이
겨울을 부여잡고 있다.
이병석
피아골에서
이이행
한시대를 뜨겁게 달군 이념 하나로
서로를 겨누던 치욕의 총부리를 거두고
살벌하게 회오리치던 피바람도 재우고
산하엔 씻은 듯이 평온이 깃들어
다시 목가가 울려 퍼진다
ㅡ 중략 ㅡ
오롯한 태고의 정적 정밀한 숨결이
갈기갈기 찢겨가버린 얼룩진 골짜기마다
다시 숨결이 돌아 새들은 노래하고
선혈이 씻긴 계곡물은 청옥처럼 푸르른데
처절하게 죽어간 꽃다운 목숨들이
뻐꾸기 되어 해종일 피를 토해 울어옌다
지리산...역사의 변곡점마다 통한의 가슴 아픈 대목마다 자애로움으로 보듬어주던 겨레의 어머니 같은 산이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지리산은 흙이 두텁고 기름져 온 산이 사람 살기에 알맞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지리산은 피난지로써 많은 사람들을 넉넉히 보듬어줬다.
지리산은 사계절 어느 때에 가도 가슴 시린 산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도 금세 물기를 머금은 진중함으로 초연해지는 산이다.
피아골 골짜기 울음 우는 바람에도, 장엄한 노고단 운해에도, 바래봉 철쭉꽃 구상나무 고사목에도, 반야봉 노을 벽소령 달빛에도 이유 모를 눈물이 마냥 흐른다.
새벽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잠이 덜 깬 눈을 부벼 뜨고 주섬주섬 챙겨 지리산을 보러 가야 한다.
어느 지리산 닮은 시인은 그랬다.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하지만 지리산을 몰라서 못 갈지언정 단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이 어찌 견딜 수
있으랴...
필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지리산은 한번도 못가 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라고. 지리산을 알기 전에는 다른 방법으로 능히 견딜 수 있으련만...
고3 수험생들의 뇌리에 각인된 수능 단골 시조가 있다. 두류산 양단수~로 시작되는 남명 조식의 두류산은 백두대간의 맥이 다시 솟은 곳이라 하여 그리 불렸다. 나는 그 두류산 보다 지리산이 좋다. 필자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를 얻는다' 했으니 말이다.
지난 십여 일간 세 번의 지리산 방랑으로 어리석음이 덜어졌는지는 모르나 분수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 것만은 분명하다. '삼대의 덕' 앞에서는 솔직히 겸연쩍지만 십여 일 세번의 지리산 여정으로 분에 넘치게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호사를 누렸다.
노고단 운해, 화엄사 흑매화, 쌍계사 벚꽃, 봄을 부정하는 계곡의 얼음 등을 실물로 접견한 필자에게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나 싶다.
힘든 삶의 언저리에서 고통과 좌절을 마주하신 분들께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어지간히 힘들어서는 오지 마시라는 시인의 당부는 마이동풍 하시라."
"그냥 다 내려놓고 다녀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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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지리산, 난 꿈 속에서도 그곳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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