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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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을 하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둔 엄마인 나는, 하루에 7번 내지는 8번 정도 밥을 차린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규칙적인 일상이 사라지니 각자의 생체리듬대로 밥을 먹어서다. 본능이 이끄는 식욕을, 시간 맞춰 먹으라고 다그친들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라 나는 잔소리를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각자의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려준다.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번갈아 식사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점심 메뉴 고민이 시작된다. 요즘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엄마 오늘 점심 뭐예요?"다. 질문의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엄마가 주려고 계획한 것이 내가 먹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귀한 시대가 아니다 보니, 호불호가 확실한 아이들은 원하는 메뉴 또한 제각각이라 메뉴 일치를 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일 때는 배달음식이나 포장음식을 먹을 때였는데, 배달음식을 받을 때마다 넘쳐나는 포장재를 보고는 쉽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자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점심이 무사히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저녁식사가 남아 있다. 아이들의 학원 시간과 남편의 퇴근시간이 모두 달라 저녁 역시 세 번을 차린다.
장을 보러 나가고, 밥을 하고,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간식을 챙겨내는 일이 매일매일 끊임없이 한 템포도 쉬지 않고 이어지니 대체 내가 전생에 밥과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렇게 매일 밥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밥 짓기 노동'은 당연하지 않다
내 얼굴이 메뉴판으로 보이는지 가족들은 요즘 내 얼굴만 보면 '오늘의 메뉴'를 물어본다. 참다못한 어느 날, 진중한 표정으로 작심하고 한 마디를 꺼냈다.
"나는 밥하는 게 너무 싫어."
멀뚱히 내 말을 듣던 남편은 "나도 일하러 나가기 싫어"라고 했고, 아이들도 덩달아 "나도 공부하기 싫어"라고 했다. 말장난을 하자는 건 아니었는데, 식구들의 대답은 장난스러웠다. 나의 진심 어린 다큐를 고민 없이 조크로 받아버린 그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은연중에 가족들은 엄마의 '밥 짓는 노동'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진짜 힘든 것은 밥을 준비한다는 것보다 이 일이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구분 지어지는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