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보다 OO님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라고 책 안에 포스트 잇을 붙인 후 책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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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런 일도 있었다.
작년 여름,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도서관이 문을 열 땐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무척이나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야 하나, 난감했던 차에 글쓰기 모임을 같이하는 친구가 서로의 책을 빌려보자고 제안했다.
동의하는 사람끼리 카톡방을 만들고 자신의 책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고 빌릴 책을 고른 후, 만나서 책만 교환하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때 내가 빌린 책 중 일본 작가의 에세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읽어 봐도 그 에세이보다 그 책 주인이 쓰는 글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이 책보다 OO님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라고 책 안에 포스트 잇을 붙인 후 책을 돌려주었다. 며칠 전 그 책의 주인이신 분이 진짜 작가가 됐다. 책이 나왔다고 선물로 주셨는데 책 앞 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빌려 본 책보다 제 글이 더 재밌다는 말 큰 힘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난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니. 도리어 내가 감사하고 기뻤다. 힘이 난 사람은 상대방인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무척이나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번엔 내가, 이번엔 네가 서로 어깨를 대어주고 발을 받쳐주며 나아가게 한다.
나에게 응원이 되었던 것들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동화 공모전에 떨어져 시무룩한 나에게 다 두더지 심사위원들이라며 날 웃게 해준 글쓰기 모임 친구들의 격려, '이야기꾼 기질이 보인다'는 작가 선생님의 말, 내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며 궁금해하는 딸 아이의 목소리, 이야기를 잘 꾸며낸다고 지나가며 툭 던진 남편의 말, 내 글을 읽으며 큭큭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 내 글 밑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
진심만 있다면 꼭 포장된 그럴듯한 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 어린 몸짓과 말과 글이 날 일으키고 나아가게 한다. 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치고 오늘도 노트북을 열게 한다. 모두 기다리시라, 언젠간 이 응원을 감사로 다 돌려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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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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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본 책에 붙인 포스트잇 한 장이 끼친 엄청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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