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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들은 백성의 소리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46회] "객지에서 늙은 여자의 원성"

등록 2021.04.16 18:29수정 2021.04.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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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하평마을, 교산 언덕에 1983년에 세운 허균 시비. 한시 '누실명'이 새겨져 있다.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하평마을, 교산 언덕에 1983년에 세운 허균 시비. 한시 '누실명'이 새겨져 있다.장호철
 
허균이 임진왜란 시기에 금강산을 찾아가는 도중 철원의 객점에서 한 늙은 여자를 만나 그로부터 들은 하소연을 표현한 내용이다. 전쟁 때 백성들의 뼈저린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장시여서 앞 부문을 인용한다. 원제는 「노객부원(老客婦怨)」이다.

객지에서 늙은 여자의 원성

 동주성 서편으로
 가을 해 뉘엿뉘엿
 보개산 마루턱엔 
 저녁노을 끼었구나.

 객점을 찾아드니
 머리 센 할멈 남루한 차림으로 
 사립문 열고 나와서 
 길손을 맞이하네. 

 이 할멈 하는 이야기
 "나는 본디 서울 사람으로
 유리파산하고 외톨이로
 타관살이하는 신세라오.

 지난번 난리에
 왜놈들이 서울을 함락할 제
 자식 하나 데리고
 어머님과 낭군을 따라

 수백리 먼 길에 발이 부르터
 궁벽한 산골짝으로 들어가
 낮에는 가만히 숨었다가
 밤이면 나가서 먹을 걸 구하는데 
 어머님 병환이 나서
 남편이 업고 가야 하니
 험준한 산속에 발바닥 뚫어져도
 숨돌릴 겨를 없었더라오. 


 그때에 비가 내리고 
 밤은 칠흑같이 캄캄하니 
 더듬더듬 발이 미끌려
 그만 험한데 넘어졌는데

 칼을 들고 덤벼든 두 놈
 어디서 홀연 나타났는가!
 전생에 무슨 척이나 진 듯이
 어둠을 틈 타 쫓아와서


 성난 칼날 번쩍하는데
 몸이 두 동강 났구료!
 어머님 낭군 모자가 
 나란히 원한의 피를 흘렸다오.

 이내 몸 어린아이 끌어안고
 숲속에 숨어 있는데
 아이가 울음소리 내니
 도적놈이 내 아이 빼앗아 갔지요." (주석 6)


주석
6> 임형택 편역, 『이조시대 서사시(하)』, 36~37쪽, 창작과 비평사, 1992.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노객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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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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