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균의 호를 따 만든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김종신
국가의 안위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살았던 허균은 백성들의 고통을 일선에서 지켜봤다. 피난 중에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나라를 지켜야 할 임금은 북쪽으로 달아나고, 수령을 비롯 지방관리들은 각자도생일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었다.
전란의 참상을 고발한 시 「본대로 기록한다」와 민족사의 고난을 상징하는 「당나라 수나라 장수 머물던 곳」이다.
기견(記見)
해 이울은 황촌에 늙은 아낙 통곡 소리
쑥대머리 서리 짙고 두 눈은 어두웠네.
지아비는 빚 못 갚아 북호에 갇혀 있고
아들은 도위 따라 서원으로 떠나갔네
가옥은 병화 겪어 새간도 다 타버리고
산 속에 몸 숨기다 베 잠방이 잃었다오
살아갈 길 막막하여 의욕조차 끊겼는데
관리는 무슨 일로 문에서 또 부르나.
늙은이들 서로 보며 슬픈 기색 하나 없이
모두 말이 올해에는 어진 원님 새로 와서
적마를 죄다 몰아 관아에서 기르고
군량 납입 재촉하여 바닷속에 저장했다네.
타다 남은 초막이라 백성은 살 곳이 없고
참호 도랑 파 만들어 호는 반쯤 없어졌네
관군은 상원으로 이동한단 말 전하니
어느 뉘 성 지키던 장수양(張睢陽)을 허할 건가.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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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연세대학교
당나라ㆍ수나라 장수 머물던 곳에서
갈라진 산기슭이 용처럼 돌아들어
꼬불꼬불 우뚝 솟아 평지를 내려보네
어느 해 만승천자 원정에 지쳤던고
이따금 행인들이 유촉을 줍는다네
공 세우기 좋아하는 수제(隋帝) 말할 나위 없고
진황과 한무 다같이 교만한 임금일세
작다고 얕볼 건가 봉채도 있는데
날리는 화살이 현의군에 범접했네
안시성 꼭대기선 북소리 두둥둥둥
모래 먼지 자욱하다 이적의 검은 깃발
백 필의 비단 선사 충성 권장 부질없소
연개소문 놀라 쓸개가 터질까 봐
화살이 눈을 맞혀 상처 입고 갔다지만
이것도 전설이라 황당한 데 지나잖네
이 걸음에 한 명장 설인귀는 얻었지만
모두 무미낭을 비웃는 노래에 어찌하랴
태자궁 앞에는 동마에 목메었고
방주성 안에는 해 붉어 핏빛 같았네
저승에 간 양제(煬帝) 역시 할 말 있으려나
당 나라의 보존 터럭 차나 아슬아슬. (주석 8)
주석
7> 이문규, 앞의 책, 269쪽.
8> 앞의 책, 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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