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사 온 이웃이 현관문 손잡이에 이사떡을 걸어놓고는 벨을 누르고 사라졌다. 이에 질세라 나도 이웃의 현관문 손잡이에 이사 선물을 걸어놓고 벨을 누르고 사라졌다.
이은영
코로나 공포로 모두가 떨던 지난해, 우리 집 벨을 누르고 누군가 사라졌다. 마스크를 쓰고 현관문 앞으로 나가보니 문고리에 손글씨가 쓰인 파란 종이 가방이 걸려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지만, 마음은 마주 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배웠다. 이에 질세라 온 가족이 거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부담스럽지 않을 선물과 함께 답장 문구를 열심히 골랐다.
"어머! 주신 떡은 너무 잘 받았어요. :) 이웃사촌님 격하게 환영합니다~~! ♥.♥ 이렇게 적을까?"
"아니~ 뭐가 그렇게 호들갑스럽고 요란해. 오버하지 말고 부담스럽지 않게 써 봐."
결국 나는 두 장의 종이를 구겨 버린 후에야 웃음과 하트 표시를 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번역 프로그램을 돌린 것 같은 환영 인사를 남겼다. (웃음)
가끔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에는 이웃사촌들이 나누고 간 정이 걸려있다. 직접 쑨 도토리묵부터 산에 가서 캐온 나물까지. 별거지만 별거 아닌 것 같은 이웃의 온기가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고 스며든다.
뉴타운 재개발 지역인 우리 동네는 코로나 비대면 속에서도 마음을 마주 보며 살아남았다. 먹을 것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일손이든, 그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정한 부의 척도는, 얼마나 가졌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나누었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비교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한, '가난'이라는 개념은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혐오하지 않는 관계는 가능하다. 나는 여느 종교의 가르침처럼 가난한 삶을 추구하거나 예찬하는 부류는 결코 아니지만, 가난에 대한 무지는 경계한다.
뉴타운, 재개발 지역의 두 얼굴
원래 뉴타운이란 합리적인 도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신도시 건설 정책을 의미한다.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나는 오랜 세월 뉴타운 조합원을 거쳐 대의원을 지나 현재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렇기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사건과 더딘 진행에 마음고생만 하다가 손절매한 조합원도 많이 보았다. 그만큼 뉴타운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어려운 요소가 많다는 뜻이다.
사실 뉴타운 사업에서 가장 힘든 점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의견 일치가 안 되면 사업은 결국 중단되거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게 된다. 게다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까지 합세해 발목을 잡으면 마음을 졸이는 시간은 더욱더 길어진다.
지난한 세월이 지나고, 최근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풀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의 서울시장의 당선 소식이 들려왔다.
"엄마. 재개발되면 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사람은 다 어디로 가?"
"재개발을 하면 의무적으로 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해. 용적률에 따라 그 수는 달라지긴 하지만, 어쨌든 2017년 6월 이전에 입주한 사람은 임대주택을 줘. 그러나 그 이후에 입주한 사람은 이주 비용만 주지."
"그렇다면 서울에서 이주 비용으로 이사 갈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음... 그게 어려운 거지."
수많은 조합원이 상상하는 도시가 현실이 되는 날, 우리 가족과 이웃은 과연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나는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 산다. 그러나 이곳이 슬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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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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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상상과는 다른, 재개발 지역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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