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아닙니다, 쑥떡 빼러 온 손님이에요

일 년 중 가장 바쁜 성수기 맞은 공주산성시장 기름집에서 본 정겨운 풍경

등록 2021.04.28 15:23수정 2021.04.2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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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쑥 삶은 쑥을 쌀가루와 버무려 쪄서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
생쑥삶은 쑥을 쌀가루와 버무려 쪄서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박진희
 
시장에 나가보니 산두릅, 데친 고사리, 삶은 머윗대, 뽕잎, 다래 순, 돌나물 등 온갖  봄나물이 보인다. 이 계절 산이나 길섶에서 나는 수많은 봄나물 중에 '제왕'이라 불리는 참두릅을 제치고 여인네들한테 귀한 대접 받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쑥'이다.


국이나 튀김으로 맛과 향을 즐기기도 하지만, 쑥은 뭐니 뭐니 해도 '떡'으로 먹어야 제맛이고 꿀맛이다. 쑥털털이, 쑥개떡, 쑥송편, 쑥인절미, 쑥가래떡.... 아! 이름만 들어도 침 넘어간다.

예전에는 떡 할 심산으로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봄쑥을 뜯기 시작하면, 며칠씩 공들여 채취해서 한데 모았다. 그걸 잘 삶아서 물에 불린 멥쌀을 가루 내 쪄서는 절구에 함께 넣고 찧어 집에서 직접 떡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떡집에 가면 천 원짜리 몇 장에 구미 당기는 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해도....

내 식구, 살가운 친척, 친한 이웃들한테 좋은 것 먹이고픈 여인네들은 여전히 온종일 쪼그려 앉아 쑥을 뜯고, 그걸 떡으로 만들기 위해 방앗간을 찾는다.

공주시 원도심의 대표 전통시장인 '공주산성시장' 안에는 주인장 손맛 자랑하는 방앗간들이 두 손으로 여러 번 꼽아야 할 만큼 많다. 2~3代씩 가업으로 이어오는 곳이 많아서 내로라하는 '간판 떡'도 실로 다양하다.


당연히 쑥떡 잘하기로 이름난 곳도 있어서 상호는 '○○기름집'인데, 떡 뽑는 솜씨가 기가 막힌다. 4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영업해 온 이곳은 연세가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님이 사장이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언니분이 가게에 붙어 있어 자매가 운영하는 걸로 아는 이가 부지기수다.
 
 한 손님이 쑥떡에 넣을 찐 쑥을 찜통 가득 담아 옮기는 주인아저씨를 돕고 있다.
한 손님이 쑥떡에 넣을 찐 쑥을 찜통 가득 담아 옮기는 주인아저씨를 돕고 있다.박진희
 쑥개떡은 멥쌀을 불렸다가 쓰고, 쑥인절미는 찹쌀을 불렸다 가루 내 쪄서 쓴다.
쑥개떡은 멥쌀을 불렸다가 쓰고, 쑥인절미는 찹쌀을 불렸다 가루 내 쪄서 쓴다.박진희
 
지난 26일은 공주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장에 나갔다가 자매 할머님이 운영하는 기름집에 들렀다. 예상대로였다. 가게 앞에는 쑥떡 빼러 온 사람, 쑥떡 사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물에 불린 쌀 담은 빨간 통 위에 파랗게 삶은 쑥을 담은 소쿠리가 나란히 열을 짓고 있다. 소쿠리에 든 이름표 믿고 잠시 자리를 뜬 손님들과 전국에서 들어오는 주문 건까지 셈하면 하루 일감이 어마어마하다.


이렇다 보니, 자매 할머님과 동생 할머님의 남편분으로는 감당하기 힘드셨는지 이날은 일손을 보태러 따님까지 동원됐다. 그런데도 기름집 일대는 난장판이었다.

'쑥멍' 때리다

워낙 만드는 양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8kg, 10kg 일정 단위로 택배를 보내기에 그런 걸까? 똑부러진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곳에서는 쑥은 쑥대로, 쌀가루는 쌀가루대로 따로 찜통에 넣어 수십 분간 쪄내고 있었다. 다른 방앗간에서는 쌀가루를 찜통에 안쳐 먼저 익힌 후 그 위에 데친 쑥을 올려 한 번 더 쪄내던데 말이다.

쑥향이 시장 일대를 점령해가며 가스불에 익어 가는 광경을 나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쑥향에 취해 '쑥멍'을 때리다 퍼뜩 깨어나니 쑥을 찔 때는 젖은 면포를 위에 올려 찌지만, 쌀가루를 찔 때는 찜통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언니 할머님께 까닭을 여쭈니, 쌀이 설익기 때문에 쌀가루를 익힐 때는 면포를 덮지 않고 쪄야 한단다.
 
 택배를 준비하는 젊은 두 여자분을 임시 직원이라 여겼는데, 떡 빼러 온 손님이었다. 두 분은 무료 봉사 중!
택배를 준비하는 젊은 두 여자분을 임시 직원이라 여겼는데, 떡 빼러 온 손님이었다. 두 분은 무료 봉사 중!박진희
 
쑥과 쌀가루 찌는 과정이 끝나면 언니 할머님의 남편분께서 그것들을 전기 절구에 넣고 한참을 골고루 섞어 주신다. 얼마 후에는 왕쑥떡(덩어리)이 완성되는데, 그걸 손님이 주문한 양에 맞춰 먹기 좋게 숭덩숭덩 잘라 포장 작업에 들어간다.

동생 할머님이 가위로 썰어낸 작은 쑥떡을 소포장 봉지에 담아 모양을 잡은 후 택배 상자에 갈무리하면 모든 작업은 끝. 기계처럼 돌아가는 작업에 평소 못 보던 낯선 두 분이 끼어 있다. 바쁜 때라 임시 고용된 직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이 두 분은 쑥떡을 빼러 온 손님이란다!

8kg, 10kg 택배 작업을 끝내니 다시 (덩어리) 쑥떡이 작업대 위에 놓인다. 일머리가  좋아 사장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언니 할머님은 두 분 손님께 "한 번만 더 도와줘" 사정을 한다. 떡살 빼는 순번이 안 닿았는지 두 여자분은 일어서려다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이분들뿐만이 아니었다. 가만 보니, 다른 손님들도 택배 상자를 옮기거나 무거운 짐을 함께 들며 할머님댁 일을 돕고 있었다. 다들 수십 년 단골인데다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시는 심성 고운 분들인가 보다. 

'가게 주인이 덤을 주니까', 혹은 '물건값을 깎아주니까'가 아니라 서로가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곳이라서... 그래서 전통시장에 가면 정겹다고들 입을 모은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운 가족 사랑, 달곰한 이웃 사랑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덤으로 맛본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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