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오마이뉴스
망원동의 한 호프집. 동네 호프집이지만 치킨은 치킨집보다, 떡볶이는 분식집보다 맛있고 육전과 갓김치의 맛이 일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호프집에서는 봄이 되면 특별 메뉴가 나오는데 다름 아닌 '두릅 튀김'. 사장님의 손 맛으로 바삭바삭 튀겨낸 황금빛 두릅 튀김을 시원한 맥주와 먹고 있자면 봄이 온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이제는 봄이 오면 '아 친구들과 두릅 튀김 먹으러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부터 들 정도다.
어린 시절에는 두릅을 딱히 좋아하지도, 아니 아예 두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사회에 나와 '봄에는 두릅이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두릅 튀김을 먹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봄에는 두릅이지!'라고 외치는 어른이 된 것이다.
우리가 먹는 두릅나물은 두릅나무의 새순 부위를 자른 것이다. 나무의 새순이라니, 어린이들의 눈에는 맛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두릅을 먹는다는 것은 봄이 되어 자라난 나무의 새순을 먹는다는 것, 그야말로 봄을 통째로 꺾어 먹는 일이다.
두릅은 목말채, 모두채라고도 부르며 한자로는 총목이라고 한다. "총목은 꼭지에 가지가 많고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 산사람들이 나무 꼭대기의 어린 순을 꺾어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라고 기록한 옛 문헌도 있다.
문헌에도 나와있듯 두릅은 손질을 하다 찔리는 일이 있을 정도로 가시가 많다. 그 가시 때문에 예로부터 동물이나 도둑을 쫓기 위한 울타리로 심기도 하고, 가시가 있는 나무는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 대문 옆에 두릅나무와 오가피나무 등을 심기도 했다.
이렇게 뾰족뾰족, 가시가 있는 나무의 새순을 어쩌다 따서 먹을 생각을 했는지, 언뜻 보기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지를 잘라먹는다는 것이 현대 도시인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감각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생두릅을 물러지지 않게 잠깐 삶아 약게 감초 쓰듯 어슷하게 썰어 놓고 소금과 깨를 뿌리고 기름을 흥건하도록 쳐서 주무르면 풋나물 중에 극상등이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두릅을 소개했다. 우리 선조들 역시 두릅을 나물 중의 나물, 극상등으로 친 것이다.
두릅은 나무 한 그루 당 채취할 수 있는 순이 아주 적기 때문에 더욱 귀하다. 특히 자연산 두릅은 채취량이 적기 때문에 가지를 잘라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일이 흔하다. 재배하는 두릅이 많아지면서 자연산 두릅과 구별하려고 나무 두릅, 참두릅이라고도 부르는데 자연산은 길이가 보통 5~10cm, 하우스 재배 두릅은 10~15cm이다.
자연산이 재배 두릅보다 더 작은 것은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따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서로 따가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렇게 크게 될 때까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나물을 캐러 산에 들어가 눈에 불을 켜고 두릅 새 순을 찾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 재밌기도 하다.
자연산 두릅이 귀하다고 재배 두릅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배 두릅도 땅 면적 대비 수확량이 다른 나물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두릅의 쌉싸래한 향은 참 귀한 봄의 호사다. 두릅의 어린순은 부드러워 나물로 무쳐먹거나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조금 더 자라 억세지면 가시는 긁어내고 데쳐서 절임으로 먹는다. 두릅은 날 것일 때보다 익혔을 때 특유의 쌉싸래한 향이 진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두릅을 데칠 때는 소금을 넣어야 푸른빛이 올라오는데 너무 데치면 식감이 죽어 별로지만 그렇다고 너무 짧게 데쳐도 푸른빛이 올라오지 못하고 탁한 색이 된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두릅을 주로 튀김으로 즐기고 중국 동북 지방에서도 두릅을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러시아 일대에서도 두릅이 자생하나 러시아 사람들은 두릅을 먹지 않는다고 하니 과연 한·중·일 사람들이 먹는 데에 유난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먹을 것에 유난인 선조 덕분에 봄의 맛과 향을 가득 담은 두릅 나무 새순의 맛을 알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이 두릅으로 만든 된장을 주먹밥에 발라 구웠다. 혼자 먹기에 두릅 튀김은 튀기고 남은 기름 처리가 골치고, 그렇다고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은 너무 흔해 고민하다 만들어 본 방법이다.
국내에서도 영화로 만든 일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기 전 머위 된장을 만들어 두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눈을 헤치고 나온 머위꽃을 따 삶은 뒤 된장과 미림, 간장, 설탕을 더해 달달 볶듯 조려 만든 이 된장이 어찌나 먹어보고 싶던지, 구하기 힘든 머위꽃 대신 쌉싸래한 향의 두릅을 사용해봐도 좋겠다 싶었다.
머위꽃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두릅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두릅으로 만든 된장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귀한 두릅의 향이 근사하게 배어든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된장, 국으로 끓여 먹어도 밥에 비벼먹거나 쌈으로 먹어도 좋고 주먹밥과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혹시나 냉장고에 남은 두릅이 있다면, 거뭇거뭇 시들기 전에 두릅 된장으로 만들어 봄의 마지막을 조금 더 즐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