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는 민간의 수사기관이나 법원과 달리 국방부에 소속된 군검찰이나 군 법원에서 수사받고 재판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해했다.
권우성
다른 범죄 피해자들도 그렇겠지만,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주장이 대립되어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일들이 많다. 이처럼 당사자 간의 진술이 엇갈리면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나오게 되는 것은 수순이다. 수사 과정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양측에서 제출하는 증거들 역시 성범죄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것들이기보다는 각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법무부나 여가부에서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국선으로라도 법률지원제도를 두고 있는 취지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성범죄 사건의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변호사에게 재판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다.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피해자가 법정에 나가 증언해야 하고 재판에서 피고인이 하는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피해자의 재판 참여는 궁금함의 차원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로서는 스스로든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서든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문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일반 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이든 방청을 하러 가는 일들이 흔쾌할 리가 없고 쉬운 일도 아닌데, 군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은 그 불편함과 요원함이 민간법원에서 재판할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건 피해자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례로 일반 사건은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사이트에서 진행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걸 모르더라도, 인터넷에서 사이트가 있다는 정도는 쉽게 검색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군사법원 사건은 사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해 조회되지 않는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조회할 수 있긴 하지만, 통상 그 사이트를 알게 되는 건 군법원에 직접 전화 등 문의를 해서다. 이렇게 저렇게 재판하는 법원이나 재판부를 알게 되더라도, 재판기록에 대한 열람·복사 과정이 일반 법원에서와 같지 않다. 이런 것들을 물어물어 해결해도, 재판일에 법원까지 가는 길은 멀다.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결정되면, 증인보호절차가 민간법원에서처럼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동일한 보호절차와 배려가 있더라도, 이미 부대 안에 진입하면서 피해자는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부대와 법정을 경험하고 그 분위기에 위축되기 십상이다. 군형법을 적용받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상당수가 피고인과 같은 '군인 등'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가령 피고인으로부터 업무상 위력을 경험하였을 피해자의 경우라면, 업무상 위력이 작동되어온 조직 안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성범죄를 군형법으로 의율하는 것에 이의 있다는 것이 군법원을 불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일신전속적인 법익이 침해받은 성범죄 사건을 군형법으로 의율하여 군 사법기관에서 처리하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군 조직의 편의와 효율이 고려된 것이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입장에서야 수사나 재판을 어디서 받든 부담되긴 매한가지일 것으로, 설령 더 부담이 되든 불편하든 그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일신전속적인 피해를 입고 그저 가해자가 군인 등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사법부로부터 판단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수사와 재판에 있어 현실적인 불편과 막연한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이치에도 맞지 않고 온당하지도 않다. 이런 불합리와 부담을 어째서 피해자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면, 군형법에서 성범죄를 계속 의율하는 것이 맞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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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원 가던 날, 성범죄 피해자는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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