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표지
후마니타스
비정규직의 탄생은 IMF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가 요구했던 것은 해외 자본이 국내 시장에 유입 가능하도록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일이었고 노동 유연화 정책이었다. 그중 하나가 비정규직이었고, 비정규직은 법제화되었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용 불안정'이다. 고용 불안정에서 오는 설움과 멸시, 부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정규직은 사측에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최소한의 복지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걸 요구했다간 오히려 쫓겨나기 십상이다. 회사 입장에서 비정규직 종사자는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조정진씨는 버스 회사 임계장으로 1년, 아파트 경비원으로 1년, 고층 빌딩 주차관리 요원으로 1년, 고속버스 회사 보안 요원으로 1년간 근무한다. 그렇지만 이들 직장 모두 부당한 해고를 당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임은 있되 아무런 권한이 없는 위치가 가장 큰 이유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나면 무조건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권한이 없으니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그러나 조금의 꼬투리만 잡혀도 시말서를 적어야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고 부당함을 참아야 한다. 고용 불안정은 부당함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규정된 업무 외적인 일도 마다하지 못하게 만든다.
21세기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는 워라벨, 저녁이 있는 삶이다. 사람들은 과거와 같은 '무식한 노동'이 아니라 일과 삶의 적당한 균형을 원한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에게 이 같은 일은 꿈과도 같은 일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식의 고용 형태로 이루어지며 휴식조차 마음껏 취할 수 없는 환경으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자를 수 있고 대체 인력이 많다는 이유에서 이들에 대한 노동 환경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정진씨 같은 경우 38년간 공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고 은퇴 후 지인의 소개로 다른 사무직에 취업했지만, 젊은이들의 껄끄러운 시선과 가시방석 같은 마음이 끝내 그곳에 적응할 수 없게 만들었고 시급 노동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는 시급 노동으로 일하다 병과 부상을 얻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비정규직에게 다치거나 아픈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바로 해고 사유다. 이처럼 인권이 중시되는 21세기에도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와 행태는 여전히 구시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임계장 이야기>는 소위 임계장으로 명명되는 노인 노동 시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부당함을 참고 견딘 눈물겨운 노동 일지다.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노인 노동시장의 파이는 지나치게 좁고 시급 일터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또 우리나라에서 노인은 '쓸모없는 사람'이란 인식이 매우 강하므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쉽사리 재취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이 받는 설움과 부당한 처사, 혹독한 노동환경은 노인 노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게다가 시급 노동은 대개 외주업체의 하청으로 이루어지므로 이들은 안전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즉, 고용 불안정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을 감내해야만 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지만, 이들에 대한 눈초리는 따갑기만 하다. 소위 "공부 안 해서 그런 직업 밖에 갖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는 멸시까지 받아야 하니 말이다.
스마트 팩토리, 4차 산업혁명이 뜨면서 고용 불안정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에도 곧 닥쳐올 일들이다. 고도화 사업의 핵심은 신기술 도입으로 재고 예측과 효율적인 재고 관리, 생산 계획 수립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건비 절감이라는 "효율"에 초점이 맞춰진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효율을 추구하고 노무비 절감은 효율의 가장 적합한 요소다. 비정규직이 만연한 이유도 정규직 두 사람의 몫을 비정규직 한 사람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싼값으로 부려먹기 쉽기 때문이다.
로봇은 쉬지 않고, 고도화된 기술 도입은 노동자들의 일터를 더욱 앗아간다. 즉, 고용 불안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규직 종사자들에게도 닥쳐올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대개 이러한 문제는 외면하기 쉽고 관심을 갖더라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뉴스로 접하지만, 그 경각심과 여론은 잠시뿐,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는 금세 그 필요성을 앗아가고 일상적인 만연이 지속된다. 그렇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비정규직 철폐, 고용 안정성 따위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 사이 또 다른 임계장들이 혹독한 노동환경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에선 워라벨과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쪽에선 워라벨이 아니라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가 극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 대체 노동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신성시되며 인간의 모든 삶이, 모든 것이 노동 그 자체에 맞춰지고 있는지, 왜 민주주의가 회사라는 문턱 앞에선 자취를 감추고 마는지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연대와 합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이 무엇인지, 왜 인간의 삶이 노동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지은이),
후마니타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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