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소중한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었지만 수소문 끝에 콜렛과 정양숙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우직한 나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준 이가 두 사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다. 윤 대표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등을 통해 콜렛, 정양숙과 인연을 맺었고 5.18 당시 두 사람의 활동을 지켜봤다. 아니,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그들과 함께 했다.
윤 대표의 41년 전 기억은 지금도 뜨겁고 또렷하다. 영국에 머물던 그녀는 TV에서 광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곧장 한국으로 들어왔고, 프랑스 신문을 옷가지에 숨겨와 한국에 오자마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1980년 5월엔 AFI 회원으로서 영국에 나가 있을 때에요. 옥스퍼드대학 인근 수녀원에서 생활했는데 수녀님 한 분이 막 달려오시더라고요. '너네 나라 전쟁났다'면서요. 그때 BBC 방송에서 광주의 모습을 처음 본 거예요. 사람들이 굴비처럼 엮여서 끌려가는 장면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TV에서 보는 미얀마 같은 모습이었죠.
'내가 이곳에서 룰루랄라 하늘만 쳐다보면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장 도버해협을 건너 AFI 본부가 있던 벨기에로 이동했고 거기서 이것저것 준비해 8~9월에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어요. 근데 너무 마음이 급해 죽겠는 거예요. 그래서 벨기에에 2- 3일 정도만 머물다 비행기 타러 파리로 갔어요.
한국에 들어오기 전 파리에 있던 신학생 몇 명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한국 상황을 물으니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르몽드>지를 구해다가 광주 소식을 담은 기사를 하나하나 다 오렸죠. 그걸 옷가지 사이사이에 다 넣었어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제발 안 걸리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다행히 통과가 됐죠.
그리고 제일 먼저 김수환 추기경님께 뛰어갔어요. 가져온 <르몽드>지 기사를 다 갖다드렸죠. 그때가 6월 5일 즈음이에요. 추기경님이 절 쳐다보더니 '남들은 전쟁 나면 다 도망가는데 넌 왜 들어왔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나라에 전쟁이 났는데 들어와야지 어디로 가요'라고 대답했죠. 추기경님이 '아휴' 한숨을 내쉬며 '그래그래' 그러시더라고요."
얼마 지나 윤순녀는 콜렛과 정양숙을 만났고, 합수부 문건에 나오는 '유언비어 유포'에 동참했다. 주로 정양숙이 건네는 누런봉투를 여기저기 나르는 일을 맡았다.
"마리안나(정양숙의 세례명) 언니가 누런 봉투에 뭘 넣어서 미아동성당 양홍 신부에게 전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그 지역 출신이거든요. (독재와 싸웠던) 우리끼린 감이 있으니 '이게 뭐냐'고 묻지 않았어요. 혹시나 잡혔을 때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했죠. 나중에 신부님들이 끌려가고 사달이 난 뒤에야 그 봉투에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잊을 수 없는 서빙고 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