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 15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이 외무부장관을 상대로 보낸 프랑스 여성 콜렛 누아르(Colette Noir)에 대한 '수사협조 의뢰' 문서. 문서에 '정마리안나(정양숙)'의 이름도 실려 있다.
외교사료관
누런 봉투 전달, 그 후
정양숙과 콜렛은 해외는 물론 광주 밖으로도 나올 수 없었던 진상을 만방에 퍼뜨렸다. 정양숙의 절친이었던 후배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의 말이다.
"언니가 누런 봉투에 뭘 넣어서 미아동성당 양홍 신부에게 전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그 지역 출신이거든요. (독재와 싸웠던) 우리끼린 감이 있으니 '이게 뭐냐'고 묻지 않았어요. 혹시나 잡혔을 때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했죠. 나중에 신부님들이 끌려가고 사달이 난 뒤에야 그 봉투에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죠."
그러나 폭압에 저항한 대가는 혹독했다. 콜렛은 외국인 신분임에도 결국 합수부 조사를 받아야 했고, 정양숙은 불시에 체포돼 서빙고로 끌려갔다. 그녀의 두 동생인 정길자·화숙씨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언니가 열심히 활동하느라 평소엔 연락이 잘 안 됐지만 조카 생일엔 꼭 왔었어요. 그런데 그해 ○○이(정화숙씨의 첫째 딸, 1978년 7월 10일생) 생일에 안 온 거예요. 조카들을 끔직히 아꼈던 언니가 안 나타날 리가 없거든요. 이상하다 생각했죠. 그리고 며칠 뒤 뉴스에 정마리안나 이름이 이렇게 (크게) 나오는 거예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면서요. 우리 모두 기절했죠."
1980년 7월 12~13일, 당시 대부분 일간지 1면에 '정마리안나' 다섯 글자와 신부 6명의 이름이 실렸다. 계엄사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쓴 기사였다. 당시 계엄사의 발표문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광주사태의 진상을 고의적으로 왜곡해 (중략) 유인물을 대량으로 제작, 이를 교계와 일반시민에게 배포하는 한편 성당 미사를 통해 (중략) 악질적인 유언비어를 유포시킴으로서 계엄 포고령을 위반한 혐의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서울교구사목국장 오태순 신부를 비롯해 양홍(미아동성당)·김택암(여의도성당)·안충석(이문동성당)·장덕필(봉천동성당)·김성용(광주 남동성당) 신부 등과 서울 명동성당 노동문제상담소 정마리안나(여) 등 주동자들을 연행조사하고 있다. 또한 수사당국은 이들이 (중략) 녹음 테이프를 외국에까지 전파시켜 (중략) 국가위신을 크게 손상케한 혐의도 아울러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