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초중고시절 썼던 책장(왼쪽)과 벽장 속 책장(오른쪽).
딸아이의 추억의 물건으로 가득했는데, 말끔하게 싹 버렸다.
박미연
지금 생각해보니, 물건을 남겨 놓는 것만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인가 의문스럽다. 실제로 그 물건을 뒤져보며 추억을 곱씹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한복에 곰팡이가 슬었을지 모른다고 걱정했을 때조차 한복을 꺼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들도 벽장을 열어 추억을 더듬지는 않더라. 추억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 아닐까.
우리 집 가구는 대부분 한국 정착 당시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다. 장롱, 서랍장, 아이들 침대, 책상... 몇 개의 책장은 사은품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다 처분하기로 했다. 다시 받은 이삿짐 견적은 5톤! 처음에 7.5톤이었던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추억의 물건을 싹 다 버린 댓가로, 이삿짐을 2.5톤이나 줄인 것이다.
물건을 잘 처분하면 숨막힐 일도 없다
"이렇게 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하지?"
"응!"
이럴 때는 옆지기와 나, 찰떡 궁합이다. 그동안 왜 그렇게 쌓아놓고 살았던지 모르겠다. 이제와 그 이유를 헤아려보면... 현재를 살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과거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미래에 필요할지도 몰라서, 현재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첩첩이 쌓아놓고 살았던 거다. 물건에 파묻혀 숨이 막힐 지경까지 말이다.
아, 물건이 많아짐에 따라 숨이 차오르는 게 비단 주부들 뿐일까. 함께 정리하던 둘째 아이가 숨이 막힐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내게 묻는다. 살림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숨이 막힐 일도 없겠다. 그러나 살림 전반을 떠맡고 있는 엄마들에게 있어서 짐은 항상 골칫거리다.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은 그때 그때 처분해야겠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염두에 두며, 오늘의 삶이 무거우면 되겠는가. 물건을 잘 처분하는 것에서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가벼워진 짐, 후련한 마음, 이사할 날이 기다려진다. 두 달 보름 전, 집주인의 입주 통보와 전셋값 두 배 상승으로 자다가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는데. 어찌저찌 이사 날짜와 견적까지 받아놓으니, 평화와 함께 기대감이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까지 덤으로 말이다. 큰 가방 한개만 들고 이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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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도 걱정도 훌훌... 이삿짐 싸니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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