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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안 낙산사에서 만난 오남매 ⓒ 박도
제망매가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이승)에 있음에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태어나고서도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에서 만날 볼 나는
도 닦으면서 (너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노라.
위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 스님이 죽은 누이의 49재를 올리면서 부른 향가 '제망매가'라고 전해지고 있다. 원래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쓴 이두(향찰)로 기록돼 전하는 것을 필자가 여기저기의 문헌을 참고하여 현대어로 가다듬어 썼다.
어제(5. 24.) 전남 광양에 사는 아우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온다기에 서울 청량리역에서 첫째 누이동생과 셋이 만나 정담을 나눈 뒤 헤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오 남매가 일 년에 봄가을로 두어 차례 만나 오대산 부모님 산소(수목장) 성묘 겸 강원도 동해안 일대를 둘러보곤 했다.
하지만 작년 올해 2년째 코로나로 오 남매가 모두 한 자리에 만나지는 못하고 둘이서, 셋이서 형편이 되는 대로 자주 만나곤 한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 박도
어머니 무언의 당부
몇 해 전, 고향 구미 삼일문고에서 나의 출판기념회로 북 토크 행사를 가진 바, 오 남매가 서울, 부산, 광양 등지에서 참석했다. 귀빈 소개 때 오 남매가 일어나 내빈에게 인사를 한 뒤 행사 뒤풀이로 저녁을 먹는데 고향의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요즘 한 고장에 산 형제들도 서로 내왕치 않는 집이 많은데 오 남매가 한 자리에 모인 걸 보니 여간 부럽지 않네."
다행히 우리 오 남매는 서로 반목질시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그 점을 칭찬하셨다.
"내가 살림을 없애서 너희들 고생은 많이 시켰지만 형제들이 우애 있게 지내는 걸 주위에서는 모두들 부러워한다. 고맙다."
이는 아마도 오 남매를 두고 발걸음 무겁게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는 우리 형제들 무언의 약속이요, 다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우들에게 늘 이른다. "우리 형제들은 서로 도와줄 생각만 하자"고.
현재까지 오 남매는 모두 건강히 서로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고 하니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저승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면 "형제끼리 이승에서 우애 있게 잘 지내다 왔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하면서, 생전에 못다 한 효도에 대한 용서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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