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무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하라! 반도체 2세 직업병 산재신청 기자회견
반올림
1995년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취업했을 때 부모님은 '못난이'가 삼성에 들어갔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20년간 삼성에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R라인은 포토공정에서 사용하는 마스크를 생산하는 라인이었습니다. 반도체 포토공정을 스텐실에 비유하자면 그 도안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R라인에서는 '케미칼 체인지'라고 불리는 화학물질 공급업무(일반적으로 엔지니어 업무)를 직접 담당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상장비와 식각(etching)장비에 화학물질을 통으로 부어 넣곤 하였습니다. 케미컬 체인지 업무를 할 때면 약품이 튀기도 하고 냄새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매우 심했습니다.
눈이 따갑고 온몸이 간지러워 4, 5년간 피부과 약을 달고 살았지만, 저희 여사원들은 그 냄새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묻지도 못한 채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려운 것을 참고 억지로 약을 줄이며 선물 같이 얻은 아이가 저희 아이입니다.
아이가 4, 5개월이 되었을 때 정밀 초음파를 하는데 선생님께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 하셨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콩팥 하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저는 클린룸에서 일을 했고, 그때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집에서 울지도 못했고 회사만 가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걸 참고 일했습니다. 그렇게 2004년 9월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반도체 공장 근무, 콩팥 하나 없이 태어난 아이
콩팥 하나가 없는 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에도 정수리에 지방이 쌓여서 머리가 안 나는 지방종이 있었고, 그냥 두면 암이 된다기에 어렸을 때 저희 아이는 큰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애가 태어나자마자 황달이 있어서 그 갓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소변 역류 검사를 하는데 검사실에 엄마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검사의 고통을 겪는 아이 울음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돌 전에 큰 수술을 마친 저희 아이는 초1 때 혈뇨를 보기 시작했고 병의 원인도 알 수 없었습니다. 콩팥이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조직검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2, 3년간을 병원을 전전하다가 IGA 신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렇게 어렵게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IGA 신증은 어린 시기에 좋아졌다가도 청소년기에서 성장하는 것이라 조금만 잘못하면 나빠지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약을 복용해야 해서 한 달에 약값만 150만 원~200만 원씩 들었고, 아이의 몸은 자주 붓고 얼굴이 까매졌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18살이 된 아이의 신장 기능은 정상인의 10% 정도로 약으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쉽게 피로해지거나 얼굴이 까매지는 증세가 나타나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 합니다.
제가 근무할 때 노출된 유해물질 때문에 아이가 약간 아프지만, 이후에 큰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일하다가 아이가 아픈 가족들의 존재가 더 가려지지 않고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5월 20일 다른 두 명과 함께 반도체 노동자 2세 직업병 산재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하였습니다. 제 이야기가 알려지고 산재로도 인정되어 아이가 향후에 적절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고, 또 다른 아픔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루빨리 아이의 직업병을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