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아버지 손문과 대한민국의 아버지 신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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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이 국무총리대리에 이어 외교부장을 겸직하며 임시정부를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즈음 결코 놓칠 수 없는 두 가지 큰 외교현안이 대두되었다.
하나는 미국 하딩 대통령이 해군군비축소문제와 태평양지역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회의(일명 워싱턴회의)에 대비하여 상하이에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를 조직하고, 이승만ㆍ서재필 등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청원서를 제출케 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쑨원에 의해 광동에서 출범한 중국의 호법정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과 지원을 요청키로 하였다. 그는 외무총장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누구보다 쑨원 총통과 호법정부 요인들을 잘 알고 있기에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호법정부란 신해혁명 당시 입헌공화제의 약법(헌법)을 수호한다는 뜻이다.
이때까지는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아직 임시대통령의 신분이어서 이와 관련 서한을 보낸 것이다.
광동정부를 내용으로 승인하야 아국정부와 인연을 결(結)하여 각계 요인으로 접합연결하고 금방 태평양회의에 광동정부의 대표파견이 상금(尙今) 기점이오라 만일 파견케 되면 그 대표에게 예선 약속하야 아국문제를 회의에 제출케하고 진력방조케 하도록 하기 위함. (주석 7)
신규식은 광동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외무총장 신규식'의 명의로 중국의 각계 지도자들에게 태평양회의에 대표를 파견할 것과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도와야 할 근거를 제시하고, 같은 명의로 일본의 각 법률단체에 통고서를 보냈다. 「통고서」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를 욕심낸 나라는 귀국이다. 지금 태평양회의를 앞두고 본국에서는 대회에 대표를 파견하려 한다. 귀국은 국제조약에 따라 대회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제출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 문제는 귀국의 자구책 가운데 상책이다. 발칸문제 때문에 유럽전쟁이 일어났듯이 지금 귀국의 지위가 바로 서방의 발칸 사정과 똑같다.
때문에 동아전쟁이 일단 발동되면 귀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먼저 참여할 것이 조금도 의심되지 않는다. 본국 문제가 토의될 것을 희망하며 귀 정부를 재촉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귀국을 위한 자구책이며 양국을 위한 일이다. (주석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