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코인 뺨 치는 '밈 주식' 광풍... 1%가 되려는 99%의 탐욕?

팬데믹 시대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 전문가들 "거품 꺼지면 큰 손실" 경고

등록 2021.06.14 07:17수정 2021.06.14 07:17
3
원고료로 응원
 미국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
미국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연합뉴스

AMC, 게임스탑, 블랙베리, 베드배스&비욘드, 클로버 헬스.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다섯 개 기업의 이름입니다. 업종은 모두 다릅니다. 이들 기업은 각각 영화관 체인, 비디오 게임, IT 기기, 주방·욕실용품, 건강보험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 기업에 최근 두드러지는 공통점이 생겼습니다. '밈(meme) 주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점입니다. 밈 주식이란 SNS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주식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이들 기업 모두 파산 위기에 몰리는 등 최근까지 시장에서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게임스탑은 소비자가 점차 비디오 게임을 찾지 않게 되면서 근본적인 사업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특이한 건 그 지점이 바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였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상에서 결집한 개인 투자자들은 이 기업들의 내재가치가 떨어지면서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수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지금껏 투자금 손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입니다.

투자자들의 매수 행렬에 밈 주식 기업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첫 거래일이었던 1월 4일, 1주당 2.2달러에 불과했던 AMC의 주가는 현재(미국 현지 시간 8일 종가) 55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초 대비 2400% 오른 셈입니다.

이뿐 아니라 8일부로 새롭게 밈 주식으로 등장한 클로버헬스의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86%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내재가치가 곧 주가를 결정한다고 믿어온 기존의 경제 논리로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현상입니다.

도대체 투자자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처음이 아니다?
 
 한 누리꾼은 지난 8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게시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에서 밈 주식인 AMC와 베드배스&비욘드를 매수했다고 밝혔다.
한 누리꾼은 지난 8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게시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에서 밈 주식인 AMC와 베드배스&비욘드를 매수했다고 밝혔다.월스트리트베츠 화면 캡처
 
먼저 투자자들의 밈 주식 투자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미국의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게시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에 모여 언제, 어떤 기업의 주가를 올릴지 '작전'을 짭니다. 기업을 고를 때는 '상장기업의 공매도 순위'를 주로 참고합니다. 주요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많이 하는 종목일수록 선택을 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공매도란 먼저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더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다시 사들여 갚는 방식의 투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작전 개시 당일, 하나로 뭉친 투자자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주가를 '달나라'로 보냅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투자 행태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오히려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dot-com bubble)'을 떠올리며 이번 사건을 '거품의 증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닷컴 버블이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IT분야 투자 광풍으로, 관련 기업의 주가에 많은 거품이 생겼던 현상을 말합니다.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현재 밈 주식 투자 열풍과 꽤 많은 닮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인터넷이 2000년대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자, 인터넷 관련 종목들에 본격적으로 거품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과는 크게 관련이 없거나 내재가치가 불분명한데도 회사명에 '닷컴'(.com)을 붙이면 주가는 치솟았습니다. 일례로 생선 단백질 관련 사업을 하고 있던 자파타헤이니 코퍼레이션은 자사 이름에 '.com'이라는 글자를 추가했고 주가는 폭등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투자자들은 야후 채팅방이나 온라인 메신저 에이오엘(AOL)에 모여 신규 투자처 선택을 모의했습니다. 어떤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더 많이 오를 것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경제학자 로버트 사무엘슨은 1999년에 상장된 456개 기업 가운데 77%가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 또한 당시 거품을 만드는 데 한몫 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995년 기준금리를 6.00%에서 다음 해 1월 5.25%로 0.75%p 낮췄습니다. 1998년에도 또 한 번 금리를 5.50%에서 4.75%로 낮추면서 시장엔 돈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커질대로 커진 거품이 꺼진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2001년 미국의 경제는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최근의 밈 주식 투자 열풍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도 풍부한 유동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토리 펀드를 세운 댄 닐스(Dan Niles)는 지난 4일(현지 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닷컴 열풍으로 1999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많은 거품이 꼈다"며 "(누리꾼들은) 현재 정부 지원금을 기반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론 인사나는 지난 1월 밈 주식 열풍을 가리켜 '거품의 징후'라고 분석한 뒤 "거품이 아직 금융 시장이나 시장 전체에 위험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 뿐, 언젠가 그렇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나는 우리가 '끝(폭락)의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랍의 봄'과 닮았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게임스탑의 주가 차트.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게임스탑의 주가 차트. CBC 뉴스 화면 캡처
 
반면 밈 주식 현상을 단순한 거품 형성으로만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내재가치 낮은 기업을 콕 집어 공략한 데는 명확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헤지펀드들에 대한 복수'가 그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1월에 벌어졌던 밈 주식 투자 광풍, 이른 바 '게임스탑 사태'가 진행되던 당시 개인 투자자들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킨 헤지펀드에 복수하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20·30대 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헤지펀드의 공매도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가정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했다며 성토했습니다. 

헤지펀드들에게 '쓴 맛'을 보여주기 위해 투자자들은 그들이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헤지펀드는 특정 기업의 주가가 내재가치 대비 비싸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판단하면 주식을 공매도합니다. 이들은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벌고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돈을 잃게 됩니다.

또 주식을 남에게 빌려 시장에서 미리 팔고, 이후 다시 사들여 주식을 꿔준 이에게 갚는 구조상,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되갚을 주식 물량을 확보할 목적으로 공매도한 종목을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숏스퀴즈(short squeeze)가 발생하게 되고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안 투자자들은 지난 1월 멜빈 캐피털, 시트론 리서치 등 헤지펀드를 상대로 게임스탑 주식을 놓고 '주가 전투'를 벌여 주가를 높여 헤지펀드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는 지난 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글을 싣고 "투자자들이 레딧을 통해 '스마트'하게 투자 환경을 재조정하고 있다"며 "그 역동성은 10년 전 아랍의 봄을 떠올리게 한다"고 긍정 평가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헤지펀드에 맞서 싸운 사건을, 2010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중동 국가로 번진 반정부 ·민주화 시위 운동에 비유한 것입니다. 

부메랑?

하지만 헤지펀드들과의 전쟁으로 시작된 밈 주식 투자 열풍이 투자자들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1900년대 초, 자동차 회사 스터츠 모터(Stutz Motor Car Co.)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투자자와 공매도 세력 사이의 혈투처럼 말입니다. 

스터츠 모터의 대표였던 앨런 A. 라이언은 1919년 당시 몇 달 만에 회사 주가가 크게 떨어진 데 대해 '공매도 세력'을 원인으로 지목한 뒤 이들과의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시장이 약세장이기도 했지만 공매도 세력으로 더 크게 떨어졌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100만 달러를 빌려 스터츠 모터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월 110달러였던 주가는 한 달 만에 245달러로 두 배 이상 급증했고 3월 마지막 주엔 391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공매도 세력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라이언이 물러서리라고 보고 시중에 풀린 스터츠 모터 주식보다 더 많은 양을 공매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언이 결국 유통 물량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그의 승리로 싸움이 끝이 났고, 공매도 세력은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해 라이언과 가격 협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라이언과 공매도 세력은 결국 주당 550달러를 지불하기로 협상을 매듭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은행에 큰 빚을 지고 스터츠 모터의 주식 또한 거래 정지되면서 라이언은 결국 손실을 복구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됩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특정 주식의 주가를 올리려고 담합한 행위가 불법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온라인에서 뭉친 개인 투자자들의 집중 매수로 주가가 급등한 AMC 등 밈 주식에 대해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는 등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SEC는 지난 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특정 주식들의 지속적인 변동성을 고려해 시장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시장 교란, 시세 조작 등 기타 위법 행위가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밈 주식 가격이 암호화폐와 같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면서 투자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밈 주식을 사들였다가 큰 손실을 볼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비중이 높아 개인 투자자들의 타겟이 된 종목의 경우 숏스퀴즈로 인해 주가가 단기에 폭등하더라도 결국은 제자리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CNBC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AMC를 비롯한 밈 주식 종목들에 "투기로 인한 거품이 커졌다"라며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작용하면서 향후 큰 폭의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AMC #밈주식 #클로버헬스 #게임스탑 #월스트리트베츠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