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산악지대나 국립공원 지역을 지날 때면 동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운전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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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고속도로에서 동물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캐나다에 거주했을 때 고속도로에서 곰도 만났고, 순록도 만났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었다.
고작 2년 거주한 캐나다에선 도로에서 동물을 만났을 때 '경적을 울리거나 차에서 내리지 말고 멈춰서서 조용히 기다려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었고, 우리는 숙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도로에서 동물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일단 멈춰서서 기다렸다. 잠시 기다린 후엔 안전하게 목적지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기억을 떠올리자, 살짝 분노가 올라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대처하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곧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한국과 캐나다는 너무나 상황이 달랐다. 도시 주변을 제외하고는 앞뒤의 차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통행량이 적은 캐나다 고속도로의 경우 동물을 만나 차를 세우더라도 추돌 사고가 날 위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안전거리도 잘 유지되지 않는 한국의 고속도로에서는 급정거는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또한, 동물들도 달랐다. 내가 캐나다의 도로에서 만난 동물들은 그처럼 날뛰지 않았다. 느릿느릿 걸어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차로 돌진했던 멧돼지는 겁에 질려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캐나다의 야생동물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었을 테다. 적은 교통량과 사람들이 지키는 매너는 동물들을 당황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동물이 놀라 날뛰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다. 도심의 공원에서도 종종 코요테를 마주하고, 뒷마당에 가끔씩 곰이 나타나기도 하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야생동물과의 공존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땐 나 역시 그랬다. 동물의 존재가 늘 머릿속에 있었고, 산악지대나 국립공원 지역을 지날 때면 동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운전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골목길에서 언제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며 운전하듯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때문에 그 곳에서 나는 고속도로에서 동물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안전수칙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캐나다의 고속도로에 나타나는 동물들은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보다 훨씬 덩치가 크다. 이런 동물과의 충돌은 사람에게도 엄청난 상해를 입힐 수 있기에 일단 멈추는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도로에서 동물을 만나면
그렇다면 한국에선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더라도 다음을 예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로에서 동물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에 대해 찾아봤다. 궁금한 점은 2019년까지 로드킬 실태조사와 예방 캠페인을 벌여왔던 녹색연합에 전화해 물었다.
녹색연합과 국립생태원, 국토부, 환경부, 한국도로공사가 함께 벌였던 '굿로드 캠페인'에 따르면 로드킬 예방의 첫걸음은 과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야생동물 주의 표시판이 있거나 도로전광판이나 내비게이션에서 주의 안내가 나왔다면 미리 감속을 하고 조심스레 운전하는 것이 좋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고를 당한 지점에서는 어떤 표지판이나 안내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특히 동물의 이동이 많은 5~6월과 10~12월과 새벽시간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실제로 동물을 만났을 경우는 경적을 울리면서 서행 통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적 소리는 위험 상황을 알리고 동물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면에서 효과가 있다.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상향등을 켜는 행위, 핸들을 급하게 조작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로드킬이 발생하거나 도로에서 동물의 사체를 발견했다면 갓길 등 안전한 곳으로 이동 후 1588-2504(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사고시)나 지역번호+120(고속도로 외 사고시)에 신고를 한다.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건이 된다면 사고 후방 100m 지점에 삼각대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동물이 살아있다면 119안전센터나 지역별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화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녹색연합의 황일수 활동가는 "로드킬 예방 메뉴얼을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로드킬은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므로 운전면허 취득 단계부터 이에 대한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고속도로 설계 당시 생태통로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 그 지역에 사는 동물의 서식지나 이동경로를 고려해 설치된 곳은 많지 않다"며 "도로설계 단계부터 그 지역에 사는 동물에게 맞는 생태도로를 건설하고, 야생동물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늘 염두에 두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자료를 찾아보고 녹색연합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사고 수습과정에서 미흡했던 점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작에 메뉴얼을 숙지했었더라면, 우리가 길을 낸 곳에 동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더라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답이야. 그냥 일단 치고 지나가야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래도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디야. 천만다행이다. 액땜했다고 생각해!"
그날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나를 위로해준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나는 어딘지 이 위로가 씁쓸하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편안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살아있는 한 생명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공존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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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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