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며 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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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아이가 베이킹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보며 빵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쉬운 카스텔라만 만들었는데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보며 다른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케이크, 스콘, 식빵, 크로아상, 소보로빵, 머랭쿠키, 초코쿠키 등을 만들었는데 어떤 건 맛있었지만 어떤 건 먹기 힘들었다. 그러면 아이는 다시 카스텔라를 만들며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또다시 새로운 빵에 도전했다. 지금은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학교도, 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던 그 시간에 유튜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필라테스 학원을 다니기가 조심스러워 작년부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한다. 처음엔 어떤 강사가 하는 영상이 나에게 맞는지 몰라 추천 영상을 이것저것 눌러 보며 내키는 대로 했는데, 그 결과 나에게 맞는 채널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채널에서 추천해 주는 운동을 아침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집에서 운동하니 학원에 다녔을 때 보다 근육이 더 붙었다.
난 평소에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몇 달 전부터는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듣는다. 한번 그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추천 영상으로 공부하면서 듣기 좋은 디즈니 음악, 지브리 음악, 팝송 모음, 피아노 연주 음악 등이 주르륵 화면에 노출됐다. 그 영상들을 하나씩 돌려 가며 듣는다. 꼭 카페에 온 것 같고 지겹지 않아 좋다.
결론은, 나부터 잘 하자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나 요즘 유튜브 잘 안 봐서 몰라" 하고 발뺌을 한다.
"엄만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계속 유튜브를 보게 되는 거 있지. 넌 어때?"라고 질문을 바꾸니 역시나 대답한다.
"내가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이 쭉 떠서 그런 걸 다 보게 돼. 영상이 별로 재미없어도 또 재밌는 게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구독을 누르지. 그런데 나중에 알림 온 걸 보면 '어? 내가 이런 걸 구독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독 취소를 해. 휴, 한 마디로 귀찮아."
'귀찮은 걸 왜 보니?'라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오늘도 아이는 아침부터 화장실에 가서 나오질 않는다. 아이도 나처럼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땐 핸드폰을 들고 간다. 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
뭐라고 하려다가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잔소리를 삼킨다. '나부터 잘해야지' 생각한다. 나부터 유튜브 시청의 기준을 잡고 아이를 지도해야 내 말이 조금이나마 아이 맘에 가 닿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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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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