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방울 놀이아기가 나가자고 칭얼댈 때마다 자주 하는 공기방울 놀이
최원석
아빠와 엄마가 아닌 사람들과 두세 시간을 같이 있는 경험이 아기에게는 없었다. 이 순간을 아기는 즐겼던 거였다. 그랬다. 필자는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전, 증조모의 장례식장에 다녀와서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안아보는 것은 가까운 친척이라도 이제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장례식장의 특성상 아기를 부부가 항상 볼 수 없으니 잠시 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아기의 종고모들이 번갈아서 아기를 안았다. 걱정을 했던 부부의 생각과는 달리 아기는 천연덕스럽게도 가만히 안겨서 고모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머리칼을 쥐는 등의 장난도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보는 여러 사람 품에서 잘 놀던 그때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돌아온 집, 옹알거리는 수준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행동은 어떠한 불만을 표출하는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평소에는 이웃들과 '너무 조용해서 아기가 집에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이 평화가 깨진 건 아기가 소리를 본격적으로 지르기 시작한 딱 이 시기부터였다. 아기는 무언가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들끼리 주고받는 단어인 '원더믹스'(아기의 정서적 적응의 혼돈기)일까 생각하고 넘겨보기도 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이가 나는 시기니 '이 앓이'인가 싶어 지나가기도 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한가 고민해서 새 장난감을 수혈해 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부에게 돌아온 건 개월 수만큼 짜증이 늘어가는 아기였다.
그러다가 아기가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던지기를 하더니 이내 장난감을 때리고 분풀이를 하는 행동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매우 중요한 분유를 먹을 때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집중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마저도 휙 던지기를 반복하고 자꾸 엄마에게 업히려고 해서 아기 엄마가 수시로 아기를 업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다 집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 아기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부부가 비로소 각성을 한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아기 엄마가 혼자 아기를 육아할 때가 많은 것은 더 큰 걱정이었다. 아기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해도 외출이라도 하자고 졸라대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늘어가는 아기의 짜증을 엄마가 혼자 견뎌야 한다니 앞이 깜깜했다.
이 시기에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적으로 아이와 병원에 다니는 동료에게 우리 아기의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고 주치의에게 의견을 부탁했다. 동료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며 답을 전달해 주셨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이런 유의 문의나 진료 요청이 많다. 비단 이 아기와의 문제가 아니다. 아기들이 사회성을 기르는 데 있어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아기들이 이른바 '재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짜증이 더 많아진 것일 수 있다.'
'8개월인 이 가정의 아기가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고집이 생기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부분은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더 심해지고 지속된다면 상담의 필요성이 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제한되고 집에서 양육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런 때일수록, 주 양육자의 신뢰 형성이 절대적으로 우선 되어야 한다. 아기들의 행동에 반응해 주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기가 행동을 과격하게 하거나 짜증을 너무 내는 순간에 절대 부모는 당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혹 불안하더라도 그 마음을 절대 아기가 알아차리게 하면 안 된다.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아빠의 육아 참여가 중요하고 엄마는 아기와의 애착형성(안정 애착)에 더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의사가 직접 아이의 상태를 보고 진료한 건 아니라 짜증의 이유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글픔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아의 짜증이 혹시 '내가 밖에서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였을까 생각하니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과 밖을 좋아하는 아기,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코로나 시대 한 단상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