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체복무를 신청하신 귀하께
귀하께서는 대체복무를 신청하셨군요. 우리 위원회는 귀하의 대체복무 신청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보내주신 신청 이유와 대면 심사에서 밝힌 내용을 진지하게 검토한 끝에 귀하의 신청을 받아들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정부는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존중하며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지 않도록 대체복무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이와 같은 심사위원회를 운영하게 된 것은 우리 시대 인권의 진일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수인의 신분을 감당하면서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이든 개인의 자유를 모두 보장하지 못하듯이 대체복무제 역시 한계를 품은 채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먼저 고백합니다. 다만 때로는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국민의 의무가 유보되거나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점이 각별한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양심 감별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체복무의 도입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계기로 했고 그 판단이 엄격하게 양심을 정의한 사정으로 인해 대체복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이 자신의 신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고 그 시기는 언제였는지를 소상히 밝히게 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우리 위원회는 신청인이 밝히고 있는 신념이 대체복무를 하기에 충분한지를 판단합니다. 신념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가 자칫 잘못하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귀하는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이 존재 이유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더 열심히 믿고 싶어서 학교 다니는 시간마저 아까워 검정고시를 선택했다고 하니 그 신앙의 깊이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금하는 일은 조롱을 받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지요. 전쟁을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전투에 이기기 위해 받는 모든 교육을 거부하기 때문에 3주간의 군사훈련도 받을 수 없다고 했지요.
사회복무요원으로 갈 수 있는데 3주간 눈 딱 감고 버티면 되지 않겠냐고, 내면의 어떤 목소리가 자꾸 채근하지만 또다른 내면은 그런 결정을 내리려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묻기도 했습니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귀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너무 부끄러울 거 같습니다."
귀하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 그것이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개인의 양심입니다.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