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대한민국 대 독일 4강전 경기. 김정환(오른쪽)이 막스 하르퉁을 상대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설자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해설자의 탄식과 격려, 응원과 흥분의 목소리에서 경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괜한 죄책감에서 탈출할 수 있으면서도 경기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올림픽 관전법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해설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뼈를 때리기 시작했다. 펜싱 경기를 할 때였다. 펜싱 칼날에 맞으면 아플까? 귀족 스포츠라는데 돈 많은 자제들인가? 이 같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해설자가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길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이죠"
펜싱선수가 공격을 머뭇대고 있을 때 한 말이었다. 마음의 진동이 일었다. 그 울림이 제법 길고 컸다. 마치 현재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무모하리만큼 생각 없이 벌인 일들이 많았다. 스무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무턱대고 서울에 온 것도, 현관문이 헐거웠던 반지하에서 살았던 것도, 아침에 눈을 떠서 바다가 보고 싶다고 당일 기차표를 끊었던 것도, 사랑 하나만으로 덜컥 결혼을 해버린 것도, 길게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순간에 충실했던 일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생각 없이 해 낸 그 일들이 결국은 꿈을 이루게 했고, 추억을 만들었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다.
현재의 나는 생각만 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던 대로 살고 만다. 수백, 수만 가지의 위험과 어려움을 생각하다 결국 안주를 택하고 마는 것이다. 뭔가를 도전하기는 두렵고 가만히 있자니 마음이 몸살 날 것 같은 기분. 펜싱 해설자의 말이 이런 내 가슴을 쿡 찔렀다.
이뿐이랴. 펜싱 해설가에게 뼈를 맞고 양궁 해설가에게 심장 과녁을 맞기도 했다. 강한 바람 때문에 선수들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 해설위원이 이렇게 말했다.
"바람은 나만 부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불기 때문에 나에게만 집중하면 됩니다."
"이미 보낸 화살에 미련을 갖지 말아요."
또 당연히 우승할 거라는 말에 어느 해설위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쯤 되면 올림픽은 내 아들의 행복 기폭제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굉장한 자극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해설위원의 말. 말. 말. 그 말들은 내 인생의 해설집이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대회에 뛰어든 출전 선수들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때도 있고, 그간 해온 고생이 거품이 될 때도 있고, 주목을 받지 못할 때도 있다. 이 같은 고뇌와 번민을 이겨내는 건 결국은 선수 자신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림픽은 4년마다 오지만 인생은 매 순간 펼쳐진다는 것. 기회가 그만큼 더 많다는 것이다.
이단 옆차기로 날아온 태권도 선수의 말
혹시 생각 없이 덤볐다가 다치거나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밀려올 때쯤 태권도 국가대표 이대훈 선수의 말이 이단 옆차기 공격을 해왔다.
"저의 올림픽을 끝마치면서 이기면 기쁨보다는 상대 슬픔을 더 달래주고, 또 진다면 제 슬픔보다도 상대의 기쁨을 더 높게 해 주기로 저 스스로 약속했거든요 저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여기 최선을 다 안 한 선수가 어디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