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씨일가가 조성해 큰 시주를 했다는 걸 기념하는 '금강계단조성시주대공덕비'
재계의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이환희
그렇게 쌍계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하려는데, 발견하게 된 '불일폭포'로 가는 길이란 팻말(나는 여기서 발을 돌려야 했다). 하동 10경의 하나라는 불일폭포의 절경을 볼까 하고 고민했다. 지도앱을 돌려보니 걸어서 35분쯤 걸린다고 한다(앱 담당자를 찾고 있다. 아시면 제보 좀). 가진 건 튼튼한 두 다리뿐이라 올라가 보자 했다.
그렇게 가는 데만 90여 분에 달하는 산행이 시작됐다. 오르막, 계단, 비탈길의 연속이었다. 초반엔 데크로 만든 계단이 있어 발이 편했는데 갈수록 흙과 바윗길이었다. 덥다 못해 녹아버릴 듯한 날씨에 돌아갈까 생각을 20210804번쯤 했고 불일폭포의 포말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산이 깊은 곳이라 시원한 기운이 골을 거치며 건너왔기 때문이었다.
구례 연기암도 그렇고 하동 쌍계사 불일폭포도 그렇고 왜 내 여정은 고행의 연속일까 싶었다. 마침 일 때문에 들고 온 랩탑과 책 두 권, 그밖에 물건들을 담은 무게가 10Kg는 족히 되었다. 마스크 스트랩에 맺히는 땀방울조차 무게처럼 느껴졌다.
쌍계사가 자리한 지리산 자락은 신라가 자랑하는 천재 고운 최치원과 연이 닿아 있다. 그가 속세를 지긋지긋해 하며 떠난 곳 가운데 하나가 이곳이고 폭포로 가는 길 가운데 자리한 환학대(喚鶴臺)는 최치원이 이상 세계처럼 여긴 청학동으로 건너갈 때 학을 불러 타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다.
쌍계사 경내에 최치원이 쇠막대기로 새겼다는 글자(진감선사 대공탑비)도 전해지고 있다. 당대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진 당나라로 건너가 외국인 대상 과거시험 격인 빈공과에 합격하기도 했고 격문으로 반란을 잠재우는 문장가이기도 했던 천재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힘들었다. 힘들고, 지치고, 땀 나고, 덥고, 무겁고, 들러붙는 산모기가 성가셨다. 나는 왜 이런 길을 오늘 같은 날씨에 골랐을까라고 20210805쯤 생각할 무렵 불일폭포를 10여 분 거리에 둔 휴게소를 만났다. 구원 같은 곳이었다.
알고 보니 휴게소는 몇 년 전 없어졌고 쌍계사에서 조성한 외국인 승려를 위한 수행터와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분소가 마련돼 있었다. 해사하게 웃으시며 나를 맞아주는 그분들을 보니 무간지옥에 빠져 악귀들이 들러붙을 때 마주한 지장보살님이 꼭 이렇게 생겼으리라 생각했다.
물을 마시고, 빈 물통을 채웠다. 조갈이 멎지 않았다. 지친 기색으로 앉아 있다 보니 그곳 관리부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아가 몽골에서 오셨다는 수행 스님이 타주시는 대자대비한 믹스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정오가 지난 이 무렵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커피의 단맛이 몸 안에 돌기 시작했고 피톨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짐을 맡기고 내려오는 길에 찾아가겠다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응낙해주셨다. 물병 하나와 전화기만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휴대전화는 골 깊은 그곳에 가서도 끊을 수 없는 족쇄였다.
다시 불일평전이라 불릴 정도로 평평한 곳이 이어지더니 데크와 쇠 프레임으로 잘 마감한 계단과 구름다리 길을 만난다. 몸이 가뿐한 느낌이었다. 가방 무거운 걸 더니 한결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