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독립유공자 서훈 위해 보훈처가 해야 할 일

[주장]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문제를 해결하라

등록 2021.09.06 17:00수정 2021.09.0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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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월 21일 동학농민군 학살사령관 미나미 고시로가 이시쿠로 대위에게 "대둔산의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고, 다시 이시쿠로 대위가 다케우치 신타로 특무조장에게 1월 23일 "대둔산에 틀어박혀 있는 적괴(동학농민군 지칭)를 토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을 받은 다케우치 신타로 특무조장이 일본군 3개 분대와 조선군 30명을 이끌고 대둔산에 도착, 다음날 1월 24일에 대둔산꼭대기에 있는 동학농민군의 본부를 모두 함락시키고, 항전하는 항일 동학농민군 25명을 모두 죽였다.

침략자 일본군은 탄약 1176발을 소비해 가며 항일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학살하였고, 심지어 28~29세쯤의 임신한 부인까지 총살하였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본부의 집도 소각하였고,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그날 오후 3시에 대둔산을 내려왔다.

그날 일본군과 싸우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둔산전투에서 총살을 당한 순국자로 이름이 밝혀진 항일 동학농민군 강태종·김재순·김판동·이시탈·장지홍·조한봉·진수환·최고금·최학연은 아직도 독립유공자가 아니다. 반면 동학농민군 토벌대(민보군)를 이끈 문석봉은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홍주성 전투 이전에 일본군 소위 아카마쓰 고쿠호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일을 의논하고, 홍주성 전투 때에 일본군과 합세하여 항일 동학농민군 압살에 최고의 공을 세운 홍주영장 홍건은 2009년에 건국훈장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이에 반해 홍주성 전투에 참여 후 태안 백화산에서 도피 중 일본군에게 총살된 가병인(賈秉仁)과, 홍주성 전투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게 생포되어 작두로 처형된 강운재(姜云在)는 아직도 미서훈이다.

항일투사 김개남 장군을 밀고하고 민보군을 만들어 그를 체포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한 임병찬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이에 반해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북상하던 중 1894년 11월 13일 구와하라 에이지로 소위가 이끈 일본군 부대에게 청주 전투에서 패배한 김개남 장군은 아직도 독립유공자가 아니다. 공주 우금치에서 침략자 일본군과 싸운 전봉준 장군도 미서훈이다.


나주의 민보군(농민군 토벌대) 출신으로 손화중·최경선의 동학농민군을 압살하여 이름을 날린 정석진과 김창균은 각각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광주와 나주에서 일본군의 바닷길 공격에 대비하고, 전봉준의 항일 봉기를 배후에서 보장(保障)해준 손화중·최경선의 업적은 기려져야 한다.

강릉부사 이회원이 조직한 민보군(농민군 토벌대)에 들어가 동학농민군을 총살하고 강원도 동학농민군의 최고 지도자 차기석을 체포한 일등공신 박동의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마찬가지로 이회원이 조직한 민보군에 들어가 동학농민군을 총살한 이영찬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충청도 영춘에서 유생들을 모아 민보군을 조직하여 영춘 현곡 소재의 성두한 휘하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4명을 처형한 정운경은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이에 반해 일본군이 세운 안보병참부를 화공으로 공격하여 병참부 건물과 막사를 소각하였고, 군용전신선을 단절시키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충청도 동학농민군의 최고 지도자였던 성두한은 아직도 독립유공자가 아니다.
 
서훈촉구 전국연석회의 참여자 단체 사진 2021년 8월 13일
서훈촉구 전국연석회의 참여자 단체 사진2021년 8월 13일 박용규
 
그렇다면, 왜 항일 동학농민군 토벌대 출신은 1962년부터 서훈이 이루어지고, 진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지금도 미서훈이라는 말인가? 그야말로 역사정의와 민족정기가 전도된 현실이다.

진짜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전봉준 등 진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분들이 서훈을 받을 수 없었다. 그 구조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국가보훈처 산하에는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가 있는데, 이 공적심사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를 결정한다.

공적심사위원회는 제1공적심사위원회와 제2공적심사위원회(11명, 최종심)가 있다. 제1공적심사위원회는 1분과(11명, 의병, 3·1운동), 2분과(11명, 국내항일), 3분과(11명, 해외항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여부는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11명, 의병, 3·1운동)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1분과의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은 지금까지 항일 동학농민군 토벌대 출신들(충청 유성의 문석봉, 충청 홍주의 홍건·안창식, 나주의 정석진·김창균, 경기의 심상희, 강원도의 이영찬·박동의 등)이 을미의병에 참여했다고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였다.

의병전공 역사학자들은 십년이 넘게 지금까지 1분과 심사위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항일 동학농민군 토벌대 출신들에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결정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항일 농민군 토벌대 출신인 문석봉·홍건·안창식·정석진·김창균·심상희·이영찬·박동의·임병찬은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의병)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의병전공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이들을 서훈하였다.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은 의병 참여자에 대해 지금까지 2682명의 서훈을 찬성·의결하여 왔다. 반면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서훈에는 줄곧 반대했다고 들었다. 2019년에 서훈심사로 제출된 전봉준과 최시형의 경우도, 1분과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반대해서 서훈되지 않았다. 나는 의병전공 역사학자들이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를 장악하고 있는 한, 전봉준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2차 동학선열들이 서훈을 받기는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25일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여부를 논의하는 제1공적심사위원회가 보훈처에서 개최되었는데,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1분과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을미의병은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않았어야 했다. 을미의병 서훈은 예외로 인정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1분과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1962년부터 2020년까지 을미의병 참여자를 120명을 서훈하는데 찬성해온 역사가 있다. 1분과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 자신들이 을미의병 참여자를 지금까지 서훈하고서, "을미의병 참여자는 서훈하지 않았어야 했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이고, 을미의병 선열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을미의병 서훈은 예외로 인정했다"는 1분과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의 발언도 망발이다. 을미의병 서훈이 '독립유공자법'에 합당해서 서훈한 것이지, 을미의병 서훈이 문제가 있는데도 지금까지 서훈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항일 동학농민군 토벌대 출신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준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서훈에 관여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해충돌에 해당한다.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은 더 이상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은 의병 분야만 심사하면 된다.
 
공주 우금티에 게시된 서훈 촉구 현수막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우금티에서 침략자 일본군과 싸웠다.
공주 우금티에 게시된 서훈 촉구 현수막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우금티에서 침략자 일본군과 싸웠다. 박용규
 
1977년 동학농민혁명 3대 장군의 한 분인 손화중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좌절된 이후 지금까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 이 문제를 논의하면 된다. 현재 제1공적심사위원회에는 3개 분과가 있다. 동학혁명분과를 한 개 더 추가하면 된다. 1분과(의병분과)에서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의병참여자를 심사해서 서훈을 하였듯이,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서 동학농민혁명 전공 심사위원들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심사해서 서훈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공평한 것이다.

현재 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들이 단 한명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공적심사위원회의 인적구성으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심사를 다루는 것은 불공정하다. 이해가 충돌하고 있는 제1공적심사위원회 1분과(의병분과)가 심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은 불공정하게 심사를 해서는 안 된다.

2021년 5월 19일 여야 국회의원 37명이 '전봉준‧최시형 등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한 독립운동 서훈 촉구 결의안'(대표 발의: 국민의힘 성일종 국회의원)을 발의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한 독립운동 서훈을 정부 측에 강력히 촉구하였다.

지난 2021년 5월 20일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가 나라의 예산을 들여 후원하여 '동학농민전쟁의 민족운동사적 성격 검토'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국가보훈처의 공훈발굴과(국장, 과장, 사무관)는 학술대회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6월 28일 성일종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 '동학농민운동 참여자 독립유공자 포상 검토'라는 제목으로 보고하였다.
 
"○ (국권침탈) 1894년 일본의 조선파병, 경복궁 점령 등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위한 것으로 일제 강점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음

○ (2차 봉기의 성격) 일본군의 침략에 대하여 일어난 항일 투쟁으로 의병,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항일 무장투쟁의 출발점

○ (포상)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서 2차 봉기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항일무장투쟁으로 규정, 독립유공자 포상 필요"(1쪽)
 
즉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해 독립유공자 포상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 지난 8월 5일에는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대학교수)의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촉구 성명서가 나왔다.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보훈처는 즉각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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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 서훈 #전봉준 #최시형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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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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