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테마공원의 서희역사산책로 풍경효양산 자락의 서희테마파크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동상으로 만든 서희 역사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거닐면서 서희의 일생을 살펴 볼 수 있다.
운민
이천의 역사를 알고, 그 맥을 짚어보기 위해 이천 여행의 출발지로 서희 테마파크를 먼저 가보려고 한다. 서희 테마파크는 공원 전체에 걸쳐 조형물로 형상화된 서희의 일대기를 두루 살피는 서희역사 산책로와 서희역사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밑에서부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형물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 시작은 서희의 할아버지인 서신일 때부터 시작된다. 서신일은 신라 말 고려 초기 이천 지역의 호족으로 이천 서씨의 시조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신라 효공왕 당시 벼슬이 아간 대부에 이르렀으나 국운이 다한 것을 알고 여기 이천의 효양산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에게 남다른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여든이 넘도록 자식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신일은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아기 사슴을 풀 더미 속에 숨겨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구해준 사슴은 나의 아들이라 말하고는 곧 나라에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며 자자손손 크게 번성할 거라 전해준 후 홀연히 사라졌다.
과연 산신령의 말대로 열 달 후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가 서희의 아버지인 정민 공 서필이다. 천수를 다한 서신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슴이 상주의 옷을 물고 효양산의 정상부로 묫자리를 안내했다. 지금도 이천 서씨 시조묘가 산의 뒤편에 남아있고, 아직도 그 위세는 당당하다.
이천 서씨는 왕건에게 도움을 준 이후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해서 서희의 아버지인 서필 때부터 재상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필이 벼슬자리에 오른 시기는 고려 왕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권력을 휘두른 4대 왕 광종 시기였는데 하루가 다르게 왕자와 귀족들은 숙청되기를 일삼으니 아무도 그에게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서필만이 그에게 직언을 올릴 수 있었다. 광종은 말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로 담당자를 처형하려 했지만 서필의 반대로 목숨을 살린 일도 있었고, 호족을 길들이기 위해 귀화인의 집을 마련한단 핑계로 강제로 집을 뺏었는데 서필은 집을 바치겠다 이야기하고는 "귀화인들이 오니 재상의 집은 모조리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 집은 누추하나 가져가시고 저는 은퇴할 때 봉급을 모아 작은 집을 사서 늙겠습니다"라고 하니 광종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일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