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 표지
눈빛출판사
나는 바보다
나의 마흔네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이 지난 주초에 발간됐다. 이 소식을 들은 한 후배의 문자였다.
"형, 또 나왔어?"
한 출판인의 말이다. 그는 내 신간을 문공부에 납본을 하러가자 담당자의 말이라면서 전했다.
"박도씨 또 출판했어요?"
이름도 별난 사람 탓인지, 다산(多産)이라는 탓인지, 유독 내 이름을 기억하면서 뱉은 말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 축복받지 못한, 인문이 고사해 가는 세상에 나는 용감하게 또 같은 제재의 책을 또다시 출판했다.
어느 작품인들 쉬이 출판했으련만 이번엔 매우 힘들었다. 그 까닭은 기존에 이미 출판한 <약속>의 개정판인 데다가 최근 출판계의 불황 여파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헌 집 고쳐 짓기가 새집 짓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말처럼, 이번 출판은 여러 가지로 참 힘들었다.
지난해 봄 <약속>을 펴 내준 눈빛출판사로 재고를 문의하자 6년이 지났는데도 초판 가운데 아직도 100여 부가 남았단다. 그 말에 순간 내가 70 평생을 헛되게 살았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도 선생님 작품은 양호한 편이에요."
출판사 직원은 위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평생 글쟁이로 살기로 작정한, 내 어린 시절의 꿈이 그 순간 잿빛으로 사라졌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혼자 분노하면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바보다.'
이 생면부지의 강원 산골에서 이 무슨 바보짓인가. 가만히 서울에 그대로 눌러 있어도 수억대의 재산을 굴리는 졸부일 텐데, 그 비싼 여비를 들여가며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이네, 중국이네, 러시아네 세계 곳곳을 수차례나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전쟁사 공부에 골몰한 뒤 끝이 이럴 수야...
이대로 절필 하느냐로 고심하다가 '그래, 다시 도전해 보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혀를 깨물고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다. 그로부터 이태만에 <전쟁과 사랑>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