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스틸샷
티캐스트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불완전하고 미묘하게 어긋나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들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나의 원 가족과 시가와 맺은 가족의 현재와 의미를 돌아보고는 했다. 이번 추석에 정말 태풍이 불었기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몸이 힘들었던 연휴가 끝날 무렵 그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가 불현듯 떠올랐다.
한때 유명한 문학상을 탔던 주인공 료타는 과거의 영광에 매인 채, 한심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혼한 전처 쿄코가 키우는 아들 신고와 만나는 어느 여름 밤, 큰 태풍이 다가오는 바람에 료타의 어머니 도시코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이들 가족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재결합을 원하는 도시코의 마음과 달리 태풍이 지나가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료타는 태풍이 닥치기 전과 조금은 달라질 것도 같다. 가족, 꿈꾸었던 삶과 거리가 먼 지금에 대해 여운이 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다음 명절 분위기도 바뀌지 않을 확률 99.9%이지만
나의 결혼생활은 어딘가 료타의 삶과 닮았다. 꿈꿨던 것과 동떨어지고 내 의지와 상당 부분 어긋난다. 행복하고 싶지만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가족의 차이를 확인하며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갈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방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머님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리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또 실패해 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역할을 내려놓으면 지금 내가 마주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체념하며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이 보인다. 우리의 생각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차이는 크지만 맞닥뜨린 삶의 고민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이번 추석을 보내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님도 세월을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원하던 방식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 지점에서 우리는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을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명절이면,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않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가끔은 푸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어머님이 평생 해 오신 일을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그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건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가 그랬듯이 이뤄지지 않을 꿈을 습관처럼 되뇌는 대신 새롭게 의지를 품는 것이다. 비록 내가 그렸던 가족의 꿈이 현실과 많이 다르다고 해도 예전같이 답답해 하지만은 않으려 한다.
다음 명절에도 기름내 맡아가며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하게 될 확률은 99.9%이겠지만 그땐 어머님에 대한 내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져 있지 않을까? 그렇게 또 한 번의 추석은 지나가고 우리는 점점 가족이 되어갈지도.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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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차 맏며느리가 묻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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