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찻집인사동의 전통 찻집에 선생님이 직접 쓰시고 코팅까지 해서 붙여 놓았다. 만약 저 자리에 물은 셀프라는 글귀가 붙었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훨씬 더 어색할 것 같았다.
유원진
"물은 손수 가져다 드십시오."
참으로 어색했다. '손수'라는 딱 두 글자로 대체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긴 하다. 하기야 정수기 옆에 물이라는 한 글자만 써 붙여도 갖다 먹으라는 암묵적 소통은 되는데, 한 문장으로 '갖다 드십시오' 하니 뭔가 어색한 그림 같았다. 그래도 어르신의 좋은 뜻이니 받들어 붙이고는 멀찌감치서 한 번을 더 보니 그럴듯하긴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뜻밖에 괜찮았다. 그것으로 대화의 주제도 삼더니 이어서 옛날 '써클'이라는 확고한 뜻의 영어가 '동아리'라는 더 확고하고도 좋은 뜻의 우리말로 바뀌고, 그 바꿈을 주도한 사람이 얼마 전 작고하신 백기완 선생님이라는 대화로까지 이어졌다.
며칠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은 한글과 한글학회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한글 사랑이 남달랐다. 지금도 '물은 셀프'라고 써 있는 식당에 가면 그것을 고쳐 써 보려고 애를 쓴다는 말을 들으니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서 했던 내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따라나서 봐라."
선생님을 따라 인사동의 냉면집과 전통찻집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