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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병상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조건⑤] 90%는 민간인데 공공병상 1% 늘리기?...공공의료 강화해야

등록 2021.10.13 12:22수정 2021.10.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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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월말까지 성인 80%, 고령층 90% 접종이 완료되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각 분야 종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시민기자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위드코로나'가 화두다. 정부는 10월 말~11월 초 전환을 예고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기간 내 사라지지 않을 거란 점에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는 선택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방역 전환으로 내세운 위드코로나가 코로나19 감염자 증가를 감당하겠다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문제들이 있다. 특히 확진자 수에 비례해 늘 수밖에 없는 중증환자 수를 고려해 본다면 이를 위한 의료 상황은 전혀 준비가 되지 못했다.

코로나가 확산될 때마다 제기된 문제, 치료 병상 부족은 여전하다. 9월 29일 기준 중환자병상이 대전, 세종, 경북에 각 2개만 남았다고 알려졌다. 준중환자병상은 경북 1개, 인천은 1개도 없다. 수도권 병상 가동률도 위험 수준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일일 350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면 의료체계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드코로나 전략은 어떤 준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우려가 제기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병상부족은 코로나 출현 이후 고질적 문제였다. 지난해 하루 수십·수백명의 환자가 며칠만 생겨도 병상이 부족해 입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발생했다. 하루 수만명 씩 확진자가 나와도 버틸 수 있는 다른 나라들의 의료체계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세계 100대 병원'이라 발표되는 곳들의 병상 수 기준 2위(아산병원), 3위(삼성병원), 7위(세브란스병원)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코로나 입원 병상 부족은 한국의 빈약한 공공의료 문제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과잉병상'의 나라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가 교대 시간이 되어 방호복 위에 착용한 산소 필터를 분리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가 교대 시간이 되어 방호복 위에 착용한 산소 필터를 분리하고 있다.이희훈

한국은 인구 대비 OECD 평균의 2.6배 병상을 가진 '과잉병상'의 나라다. 그 90%가 민간 소유라 '허수'나 다름 없다는 게 병상 부족문제를 낳고 있다. 민간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10% 밖에 안 되는 공공병상이 80%의 코로나 환자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인력도 누적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청 앞에는 공공병원 간호사 사직서 674장이 뿌려졌다. 평소에도 다른 나라보다 5배나 많은 환자를 보던 간호사들은 감염병 이전부터도 온갖 질병과 우울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명을 끊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은 그냥 두고 위드코로나 하겠다는 말에 '현장 모르는 허무한 얘기'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 재난으로 인해 이제 감염병과 살아가야 하는 일은 한두 해의 과제가 아닐 수도 있다. 아마 지금의 시스템을 전환하지 못하면 고통스럽게 계속될 재앙일지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팬데믹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후위기는 심각한 산불, 폭염, 가뭄, 홍수로 건강위기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감염병 발생 가능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상시적 재난 시대에 의료는 지속가능한 삶의 유지를 위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보편적 기본재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의료가 더는 시장에 맡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에만 집중하는 정부는 다수를 위한 그리고 재난에 대비하는 공공의료 확충에 관심 없다. 올해와 내년 역시도 공공병원 확충 예산은 거의 '제로'다. 반면 코로나19 기간 동안에도 의료산업화 예산은 수천억이었다. 정부는 10%인 공공병상을 겨우 11%로 늘리겠다는 보잘것없는 계획만 내놓고 있다.

부실한 의료 보장도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기 어렵게 한다. 한국은 건강보험에 상병수당이 없고 유급병가 또한 없는 OECD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친 지 1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개인방역 제1수칙 '아프면 2~3일 쉬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백신휴가도 대다수에겐 그림의 떡이다. 많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백신 맞고 쓰러질 때까지 일하거나 백신접종을 아예 포기한다.


또 백신을 접종하고 만에 하나 중중 이상반응이 생겨도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면 입원비는 고스란히 개인 책임이다. OECD 대부분의 나라들은 어떤 이유든 입원치료가 거의 무상이고 와병 시 생계보상도 해 이런 논란 자체가 없다. 한국의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은 백신 불안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백신 패스'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사회보장이 필요한 이유다.

병상이 포화되면, 젊은 환자들 운명도 바뀔 것
 
 7일 오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7일 오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권우성
 
공공의료를 강화할 뿐 아니라 민간병원에도 공익적 역할을 강제해야 한다. 그간 민간병원이 코로나19 환자뿐 아니라 저소득층, 홈리스, HIV 감염인 같은 약자들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몇 안 되는 공공병원이 모두를 감당했다. 그래서 코로나19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코로나 전담병원이 된 공공병원에서 쫓겨난 약자들은 의료공백으로 희생되었다. 반면 삼성, 아산 같은 재벌병원들은 거의 청정하게 보호되어 돈벌이를 해왔다.

이처럼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가 모두를 돌보지 못하는 나라에서 오로지 비용 절감을 위한 혹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방역완화' 방식의 위드코로나는 도박이거나 위험한 선택지일 수 있다. 사실 위드코로나는 '생계'를 살린다는 이유로 '생명'을 어느 정도 포기하자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이 인정하듯 치명률이 낮아져도 확진자가 많아지면 사망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약자인 면역저하자, 만성질환자, 사회경제적 취약층이 희생될 것이다. 그리고 병상이 포화되면 살릴 수 있는 젊은 환자들의 운명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정부가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인가? 전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 1년 8개월 간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도입과 재정지원에 극도로 인색했다. 그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이 누적되면 늘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는 유행 재확산과 건강의 위기였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한 재정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5%로, 이는 주요선진국 평균인 17.3%에 턱없이 못 미쳤다. 그 차이인 약 13%에 해당하는 돈이 무려 390조 원이다. 정부가 아낀 390조 원만큼 개인에게 고통이 지워졌다. 재난 와중에도 기업은 매출과 이윤이 최고조에 달하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도 상승해 세수는 오히려 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고통의 원인은 감염병과 거리두기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와 이를 방치한 국가다.

코로나와 함께 산다고 해서 영국처럼 급격한 방역완화 모델로 향할 수는 없다. 영국은 백신 접종률도 높고 공공의료체계도 갖춰져 있지만 하루 100~200명씩 사망한다. 위드코로나를 선언했지만 매우 조심스런 방역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는 싱가포르처럼 일정수준의 거리두기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방역과 의료 모두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런데 이 '사회'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거리두기 수용성은 급격히 떨어졌고, 취약한 공공의료는 소진되고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말했듯 "코로나 이전에 나쁜 것들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생계와 생명 사이 어디에서 균형을 잡을까'라는 위험한 계산이나 기술적·생의학적 해법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위드코로나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우려된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은 독일 정치가이자 의사인 루돌프 비르효가 직시한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다름 아니라 큰 규모의 의학"이라는 진리다.

한 마디로 더 평등하고 공공성이 강화된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 감염병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입니다.
#위드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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