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권우성
공공의료를 강화할 뿐 아니라 민간병원에도 공익적 역할을 강제해야 한다. 그간 민간병원이 코로나19 환자뿐 아니라 저소득층, 홈리스, HIV 감염인 같은 약자들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몇 안 되는 공공병원이 모두를 감당했다. 그래서 코로나19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코로나 전담병원이 된 공공병원에서 쫓겨난 약자들은 의료공백으로 희생되었다. 반면 삼성, 아산 같은 재벌병원들은 거의 청정하게 보호되어 돈벌이를 해왔다.
이처럼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가 모두를 돌보지 못하는 나라에서 오로지 비용 절감을 위한 혹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방역완화' 방식의 위드코로나는 도박이거나 위험한 선택지일 수 있다. 사실 위드코로나는 '생계'를 살린다는 이유로 '생명'을 어느 정도 포기하자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이 인정하듯 치명률이 낮아져도 확진자가 많아지면 사망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약자인 면역저하자, 만성질환자, 사회경제적 취약층이 희생될 것이다. 그리고 병상이 포화되면 살릴 수 있는 젊은 환자들의 운명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정부가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인가? 전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 1년 8개월 간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도입과 재정지원에 극도로 인색했다. 그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이 누적되면 늘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는 유행 재확산과 건강의 위기였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한 재정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5%로, 이는 주요선진국 평균인 17.3%에 턱없이 못 미쳤다. 그 차이인 약 13%에 해당하는 돈이 무려 390조 원이다. 정부가 아낀 390조 원만큼 개인에게 고통이 지워졌다. 재난 와중에도 기업은 매출과 이윤이 최고조에 달하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도 상승해 세수는 오히려 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고통의 원인은 감염병과 거리두기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와 이를 방치한 국가다.
코로나와 함께 산다고 해서 영국처럼 급격한 방역완화 모델로 향할 수는 없다. 영국은 백신 접종률도 높고 공공의료체계도 갖춰져 있지만 하루 100~200명씩 사망한다. 위드코로나를 선언했지만 매우 조심스런 방역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는 싱가포르처럼 일정수준의 거리두기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방역과 의료 모두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런데 이 '사회'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거리두기 수용성은 급격히 떨어졌고, 취약한 공공의료는 소진되고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말했듯 "코로나 이전에 나쁜 것들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생계와 생명 사이 어디에서 균형을 잡을까'라는 위험한 계산이나 기술적·생의학적 해법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위드코로나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우려된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은 독일 정치가이자 의사인 루돌프 비르효가 직시한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다름 아니라 큰 규모의 의학"이라는 진리다.
한 마디로 더 평등하고 공공성이 강화된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 감염병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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