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창원마산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열린 '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식'.
창원시청
"민주화에 아무런 공도 없으면서 그 열매만 요구하는 껍데기들이 떠오른다. 신동엽 시인은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대열에는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으면서 민주화의 대부라도 되는 듯이 떠들어대는 껍데기들에게 일갈했다. '껍데기는 가라, 4·19도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절규가 느껴진다."
백남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마산) 회장이 25일 오후 마산합포구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열린 동상 제막식에서 '일갈'했다. 4·19뿐만 아니라 3·15도 '껍데기는 가라'고 한 것이다.
백 회장은 "저도 절규하는 마음으로 부르짖는다. 껍데기는 가라. 3·15도 껍데기는 가라. 자랑스러운 우리 마산, 3·15의거의 도시 마산에서 껍데기들이 썩 물러가라"고 했다.
이어 "혁명의 피를 흘릴 때는 숨어 있다가 이제 와서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껍데기를 가라. 민주화운동의 대열에는 한 번도 서본 적 없으면서 민주화의 대부라도 되는 듯 떠들어대는 3·15의 껍데기는 가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백 회장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4·11민주 투쟁이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통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도록 시에서 토론회 등을 마련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창원시에 요청했다.
그는 "오늘 제막하는 이 동상이 열사가 솟아올라 4·11민주항쟁을 일으키고, 4·19를 완성한 그 날처럼 바다 속에 설치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허성무 창원시장을 비롯한 이옥선·박옥순 경남도의원과 김종대·전병호 창원시의원,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 조형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등 인사들이 참석했다.
제막식은 식전공연과 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동상 제막, 작품 감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동상은 왕광현 작가(대표작품 속죄상)의 작품으로 높이 5m(기단 포함)의 청동(브론즈) 재질이며, 교복 차림으로 오른쪽 가슴에 두 손을 얹은 김주열 열사가 바다에서 솟아오른 모습이다.
왕광현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조형성과 예술성을 갖춘 조형물을 시민들과 향유함으로써 점차 퇴색해가는 열사님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열망한 그의 신념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허성무 시장은 "김주열 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시의 발전으로 보답해 김열사가 펼치지 못한 꿈을 후배 청소년들이 펼쳐나갈 수 있는 민주성지 창원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민주성지 창원의 자긍심을 품은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는 2018년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됐다. 이에 창원시는 김주열 열사 동상 제작, 설치를 추진했던 것이다.
동상은 지난 7월초 준공했지만, 설명판(부조벽)에 새겨져 있었던 '4·11민주항쟁'이란 문구에 대해 논란이 일면서 제막식이 미뤄졌다. 3·15기념사업회는 '3·15 2차 의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창원시는 '부조벽'에 대해 "4·11민주항쟁 문구와 관련해 지역주민, 학계·민주화 단체 등 상호간 학술적 의견(논쟁) 불일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의견에 대한 '3·15 2차의거' 또는 '4·11민주항쟁'의 역사용어 정의는 시민, 역사전문가, 학계 등에서 지속적인 논의 후 결정돼야 할 사안으로 장기간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설명판에는 '4·11 민주항쟁'라는 문구가 지워지고, "1960년 4월 11일. 김주열 열사, 이 바다에 민주의 횃불로 떠 오르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주열 열사는 1960년 옛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 신입생에 합격한 뒤 3.15의거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 27일만인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이날을 '4·11민주항쟁'이라 불러 왔다. 김주열 열사기념사업회는 '추모의 벽'에 '4·11민주항쟁'이란 벽보를 새로 만들어 붙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