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부산시청 광장에 부울경518민주유공자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의 "노태우 국가장 거부"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김보성
한술 더 떠,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의 모두발언에서 "재임 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기리고자 하는 노태우의 업적은 뭘까. 8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북방정책, 그리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하나같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임을 부인할 순 없다. 다만, 그것들은 당시 소련의 88올림픽 참가 결정 이후 도미노처럼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었다. 1989년 몰타회담에서 미소 정상에 의해 냉전 종식이 선언되었고, 우리나라는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곧 북방정책은 자연스럽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곧,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었다. 요즘 말로, 외부 환경이 노태우의 치적을 '하드 캐리'한 셈이다.
정부는 한사코 그의 업적에 방점을 찍으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백 보 양보해서, 그 모든 게 노태우의 탁월한 정치적 역량에 기인했다고 치자. 그러면 쿠데타를 일으키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천인공노할 죄과가 덮어지는 것인가.
"전두환은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국가장을 치르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노태우는 되고 전두환은 안 된다는 게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둘은 권력 서열 1, 2위였을지언정 헌정질서를 파괴한 쿠데타와 광주 학살의 주범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론 분열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당장 국가장법에 따른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두고 지역마다 입장이 제각각으로 갈렸다.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광주에서는 조기 게양조차 거부했지만, 그의 고향인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는 분향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광주에서는 대구와 경북을 향해 "시민을 학살한 군사독재정권의 편이냐"며 항의하고, 대구와 경북에서는 광주를 향해 "용서할 줄 모르는 모진 사람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피해자의 용서가 전제되지 않은 정부의 화해 시도는 서로에게 더 깊은 생채기만 남길 뿐이다.
공교롭게도, 1992년 노태우가 김영삼, 김종필과 손잡았을 때 벌어진 상황과 유사하다. 이른바 '3당 야합'으로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철저히 고립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망국적 지역감정으로 남아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국가장 결정에 반대하고 나선 광주와 호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점이다.
"노태우가 전두환과 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이렇게나마 답했다. 역대 최저 득표수로 당선됐을지언정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점, 유언장으로나마 '대리 사과'했다는 점, 추징금 2628억 원을 완납했다는 점 등에서 전두환과는 다르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찾아낸 답변이 한없이 궁색하고 아이들 앞에서 민망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그게 국가장 결정의 이유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힐난했다. 한 아이는 온 국민으로부터 전두환이 몹쓸 인간으로 조리돌림 당하다 보니, 되레 노태우가 착해 보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을 이었다. 다른 한 아이는 이번 사달을 매조지듯 이렇게 말했다.
"12.12 쿠데타를 부인하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학살한 그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건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이자, 5.18을 비롯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입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사죄하고 이번 국가장 결정을 취소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흠결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0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광주 아이들의 분노 "지금이라도 노태우 국가장 취소해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