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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역사의 기록과 함께 영면한 날이다.
"아빠! 노태우가 누구예요? "
뉴스 기사를 보며 아내와 나눈 대화를 듣고 둘째 딸 가영이가 묻는다.
"음... 우리나라 13대 대통령이었지. 26일에 돌아가셨어. 공교롭게도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과 같네. "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는 역사를 어려워한다. 지난여름 방학 때 가영이와 함께 한국사 공부를 하며 5.16 군사 혁명과 12.12 사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현대사를 짧게나마 알려 준 적이 있지만 2009년 생인 가영이가 노태우 전 대통령을 알리가 없다.
그저 교과서에서 잠깐 스쳐간 이름일 뿐, 국립묘지에 왜 갈 수가 없는지,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또한 노태우 대통령으로 불리지 않고 노태우씨로 대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아이들의 눈높이와 정서로 어떻게 하면 12.12사태와 5.18 민주화운동과 노태우 정권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딸아이와 식탁 앞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가영아! 지난번에 노태우가 누구냐고 물어본 적 있지? ''
"아빠가 설명해줄게. 잘 들어봐~ 1932년 생이니깐 할아버지보다 10년 먼저 태어나신 분이네. 대통령 임기는 1988년 2월 25일~1993년 2월 24일 까지였어. 5년의 재임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단다. 1988년도에 올림픽이 열렸고, 1989년 1월부터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해외 여행자유화가 시작되었지. 아빠가 고등학생 일 때 1992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를 했어."
"우와~ 그랬구나. 재밌어요. 아빠. 그런 일들이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있었다니."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딸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다.
"6.29 민주화 선언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지? "
"네, 조금 어려운 말이에요."
"6.29 선언은 1987년도에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국민들이 요구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그렇게 하겠다고 발표한 거야. 민주화란 민주주의를 뜻해.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제도를 말하지. 대통령 직선제는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겠다는 거고."
"6.29 선언은 잘한 일이네요. 그런데 왜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죠? 왜 노태우씨라고 불러요?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분이 잖아요? "
"글쎄... 그건 가영이가 좀 더 크면 더 이해를 잘할 수 있겠지만 지난날 우리의 현대사가 굴곡이 좀 많아. 역사는 흐름으로 알아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어. 박정희 대통령을 알지?"
"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잖아요."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에 암살되었어. 당시 온 나라의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혼란스러운 정부가 되었지. 그런 와중에 그해 12월 12일 군사 반란이 일어나는데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거야. 전두환, 노태우는 당시 군인이었지. 그들이 만든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 세력과 함께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를 협박하고 군대를 움직여서 쿠데타를 일으켰어.
총을 든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정부와 국민들을 위협하고 겁을 준거야. 이건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지. 민주화 세력은 이를 지켜볼 수가 없었고 신군부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와 시위가 일어났어.
마침내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의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국성토대회가 열렸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즈음 이후로 신군부는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어. 특전사를 광주로 보내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총을 쏘며 진압을 했고 7200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지.
이들 중 사망자가 218명,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이 363명이나 됐고 다친 사람은 5000명이 넘었어. 이 사건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고 가족을 잃은 아픔은 4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단다.
5.18 이후 신군부 세력은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며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강압 정치가 시작되었어. 예를 들면 언론 통폐합, 삼청 교육대등 등 민주인사들을 탄압했지. 학창 시절 아빠도 전두환 대통령 해외순방 일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러 친구들과 김포공항 인근으로 동원되었던 기억이 있네.
1980년 8월 27일 전두환의 집권 이후 야당과 재야 민주 인사들은 군사 정권의 정통성과 탄압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했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겠다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지. 이에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일체의 개헌 논의를 하지 말라는 발표를 했어.
이런 정치적 배경 속에서 서울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어. 경찰력이 마비가 될 정도로 정국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고 마침내 전두환은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를 수용하고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했지. 6.29 선언에 의해 이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헌법 개정이 이뤄졌어. 그로 인해 전두환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리는 계기가 만들어졌어. "
잠자코 듣고 있던 가영이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가영아, 6.29 선언으로 인해 직선제의 길이 열렸고 노태우가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왜 훗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렸을까?
아이러니라는 말이 있지.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뜻해. 그토록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가득했었는데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12.12사태로 전두환과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킨 노태우였다니 말이야.
어쨌든 완전한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았어. 노태우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 대통령으로 김영삼이 당선되었지. 이제야 비로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난날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 정당한 심판이 내려지게 되는 거야.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에게 군인을 동원해서 총을 쏘며 힘으로 정권을 장악한 그들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이 내려졌어. 얼마지나지 않아 특별 사면이 됐어.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야. 이 또한 모순이지.
결국 전두환, 노태우는 전대통령으로 예우해주지 않기로 했고 1997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전두환은 2205억 원을, 노태우에게는 2628억 9000만 원의 막대한 추징금을 내도록 판결했어. 그나마 노태우는 완납을 했지만 전두환은 미납금이 966억 원(2021년 현재) 남았다더구나. 이렇게 많은 벌금이 남았는데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추징금을 내고 있지 않으니까 국민들은 지금도 분노하고 있어.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우선 긍정적인 면은 나름대로 소련 중국과의 외교 수립과 남. 북 관계에서 공동 비핵화를 약속하는 등의 성과 가 있었지.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고속철도 (KTX)와 영종도에 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도 재임 중 이룬 성과야.
앞서 말한 12.12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전두환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에서 민간인이 군인들에 의해 무자비한 학살을 한 사건에 대해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던 건 부정적인 면이지. 하지만 그의 아들 노재헌씨가 광주로 내려가 사죄를 했는데 여전히 국민들의 마음속엔 앙금이 남아 있어.
노태우는 2009년에 소뇌 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기 시작했고 더 이상 공식석상에서 볼 수가 없게 됐지. 그의 딸 노소영씨는 SNS에서 '아버지의 인내심 '이라는 글에서 아버지가 앓고 있는 소뇌 위축증이란 대뇌에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며 눈짓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며 이점이 더 큰 고통이라고 밝히기도 했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한다고 결정됐어.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에 하는 거야. "
"아빠, 뭔가 좀 이상한데요? 전두환과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갖고 민간인을 총으로 죽인 5.18 민주화 운동에 책임이 있다면서 왜 국민의 존경을 받을 때 한다는 국가장으로 장례를 하는 거예요?"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딸아이의 질문에 뭐라 말해줘야 할지, 어른들의 세상은 왜 그리도 모순과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국가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용서를 구한다' 는 고인의 유언과 유족의 사과로 가족을 잃은 1980년 5.18 광주의 슬픔과 아픔이 치유될 수는 없다. 훗날 이어질 올바른 역사의 평가는 두 가지 시선으로 이어진다.
꼭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나 유명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분명 공과 (功過)는 있다고 딸아이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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