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이 무엇보다도 더 야비하고 또한 사랑스러운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재능까지도 주기 때문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백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이란 것도 그 잘난 맛을 느끼다보니까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교 우위적 잘난 맛은 인종적, 민족적으로 많은 편차를 보인다.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느껴지는 이야기이겠지만 중국인들은 되도록이면 자기표현을 자제하는 탓에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뛰어난 사람인지, 누가 대망을 품고 있는지 처음에는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가슴 속에 큰 야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진시황 시절 대망을 꿈꾸던 진승(陳勝)의 이야기다. 진승은 진시황의 폭정을 못 이기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하면서 민중 반란을 일으켜서 진나라를 무너뜨리는데 기폭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진승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아야 했지만, 마음 씀씀이가 크고 배짱도 두둑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집 밭에서 일을 하다가 탄식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출세해서도 옛 친구는 잊지 않도록 해야지..."
이때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마라. 머슴 주제에 무슨 방법으로 출세를 한다는 것이냐?"
그러자 진승은 개탄했다.
"슬프도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큰 뜻을 알겠느냐."
훗날 진승은 비록 실패를 거두긴 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거사를 일으켰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모두 다 같은 인간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외치며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민중을 끌어 모아 옛날 초나라의 수도였던 진성을 점령하고 왕이 되었으며, 국호는 '장초'라 했다.
진승처럼 한낱 머슴이었던 사람이 그런 큰 꿈을 꾸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주만 믿고 지나치게 남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 남은 인물 중에 그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오기(吳起)일 것이다.
손자병법과 함께 병서의 쌍벽을 이루는 오자병서(吳子兵書)를 쓴 전국시대의 병법가 오기는 대단히 재주가 많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오기가 위나라 무후를 섬기며 요충지인 서하의 태수로 있을 때였다.
위나라에는 새로운 재상을 뽑고 있었는데 전문이라는 사람과 오기가 물망에 올랐다. 오기는 자신이 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맹상군이 재상에 임명되고 말았다. 자신의 재주가 더 뛰어나다고 믿고 있던 오기는 잔뜩 화가 났다. 어느 날 그는 맹상군과 만난 자리에서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군사들을 훈련시켜서 진나라의 침략을 막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기가 묻자 맹상군은 허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거야 군대를 통솔하신 오기 장군 당신이지요."
"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도 장군이시지요."
"그럼 우리 두 사람 중에 나라를 위해서 누가 더 공을 더 많이 세웠습니까?"
"그것도 장군입니다."
"이렇게 셋 다 내 공적이 큰데 어찌하여 높은 자리에는 대감이 올랐으니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자 맹상군이 대답했다.
"지금 주군은 아직 어리시고 나라 안은 안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하들은 화합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외국과의 전쟁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국민적 화합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장군께서 하실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정말로 장군과 나 중에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오지는 한참 침묵을 하고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대감이 적임자로군요."
오기는 전쟁과 병법에 능한 자신의 재주를 지나치게 믿은 탓에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중에도 그는 그러한 잘못을 시정하지 못해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을 낮추면 명예는 높아진다
위나라의 공자 신릉군은 전국 4공자에 속할 만큼 부귀한 몸이지만 가난한 선비들에게까지 겸손했다. 그는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에게도 머리를 숙임으로서 더욱 존경을 받았다.
당시 나이 칠순이 된 후영(侯嬴)이란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도성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신릉군은 그가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한 예물을 보내 빈객으로 초청했다.
후영은 예물을 되돌려 보내며 다음같이 말했다.
"저는 몸을 수양하고 행동을 조심하며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지금 곤궁하다 하여 공자의 재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신릉군은 빈객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게 하고, 자신이 직접 가서 후영을 모시러 갔다. 그렇게 되자 후영도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어서 수레의 상석인 왼쪽에 올라앉았다. 수레의 상석에 올라앉은 후영은 신릉군의 안색을 살폈지만 신릉군은 손수 말고삐를 잡고 말을 몰면서 더욱 정중하게 후영을 대했다.
연회장으로 가는 도중에 후영이 신릉군에게 말했다.
"저자거리에서 푸줏간을 하는 주해라는 친구가 있는데 잠시 그를 만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잠시 그 곳에 들렀다 갔으면 합니다."
신릉군은 한 마디 군소리도 없이 수레를 몰고 저자거리로 들어섰다.
잠시 수레에서 내린 후영은 백정노릇을 하는 친구 주해를 만나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었다. 그는 사방을 곁눈질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신릉군의 얼굴빛을 살폈다.
그러나 수레에 앉아 말고삐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는 신릉군의 얼굴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 얼굴빛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온화해졌다.
한편 신릉군을 따르던 하인들은 자신의 주군을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후영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집에서는 지금 한창 주연을 벌이기 위해 위나라 장상들과 종실, 빈객들이 모여 신릉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영은 계속해서 주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저자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릉군의 행차를 구경했다.
신릉군은 집에 도착하여 연회석상으로 나갈 때도 후영을 상석에 모셨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후영이 신릉군에게 술잔을 올린 후 말했다.
"오늘 제가 공자님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라니요? 무슨 무례를 범했다고 그러십니까?"
신릉군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저자거리에서 무례를 무릅쓰고 제 친구 주해와 너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무례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옆에서 들어보니 두 분이 하는 이야기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던데요?"
후영이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그때 공자님께서 어떤 인품이신지 한번 시험해본 것뿐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할 이야기도 없는데 친구와 긴 시간을 끌면서 잡담을 나누어본 것입니다.과연 공자님께서는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십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화를 내고 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혼자 가버렸을 것입니다."
"허허허, 현명한 선비를 모시려면 그 정도 시간이야 기다릴 수 있어야지요."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저자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제가 하찮은 문지기이고, 제 친구가 푸줏간을 하는 백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레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랬을 테지요."
"사실을 말씀드리면, 제가 저자거리에서 취한 행동은 공자님의 명예를 높여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후영의 말을 듣고 신릉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명예를 높이다니요?"
"이제 저자거리의 사람들은 저를 보고 소인배라고 수군댈 것이고, 공자님을 성인이라 하여 더욱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낮의 일로 공자님의 명예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신릉군은 감탄했다.
"과연 그렇군요.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저의 명성을 높여주신 선비님의 깊은 심중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 후부터 신릉군은 후영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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