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언어학자·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참여사회
- 코로나19 국면에서 듣게 되는 단어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팬데믹', '부스터 샷' 등은 처음 들었을 때 뜻이 와닿지 않았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는 유행처럼 번졌다. 정부 지침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한 단어였다.
"소셜 디스턴싱(social distancing) 개념을 한국어로 표현한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다. K-방역 숨은 1등 공로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셜 디스턴싱은 쉽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이다. 언어가 누구를 향하는지 의식하지 않는다면 '팬데믹', '코비드19'처럼 '소셜 디스턴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통해 개념이 보다 명확해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비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전문가들과 언론은 전문용어라며 비말이라고 부르고 다녔는데 찾아보니 '침방울'을 뜻했다. 침방울이라고 하면 모두 알아들을 텐데 왜 비말이라고 할까. 이번 책에 '코로나19 시대의 언어 풍경'이라는 챕터가 있는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담았다. '위드 코로나', '팬데믹', '부스터 샷'. 이런 단어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말은 상대를 향한다. 말과 글은 쉽게 들리고 잘 읽히기 위해 하는 행위다."
- 왜 이런 단어를 쓰게 되는 걸까?
"번역하는 태도 때문이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언어를 개발자 관점에서 바라본 적 없다. '부스터 샷을 어떻게 번역하지?'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보다 알기 쉽게 '추가 접종'이라고 부르면 된다. 번역을 하더라도 자세는 달라야 한다. 우리가 우리 언어로 우리 개념을 만든다는 개발자 자세가 필요하다."
- 2018년 <언어의 줄다리기>에 이어 최근 <언어의 높이뛰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언어생활을 운동 경기에 비유한 이유가 있나?
"말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 줄다리기가 일어난다. 언어의 줄다리기는 딴죽 거는 게 아니다. '이 말을 하자' '저 말을 쓰자'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거다. 이면에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싸움이 있다. 언어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특징이 있다.
언어는 과거의 산물이고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오늘 이런 표현이 있는 건 어제의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그 표현이 내 마음에 걸리는 건 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뀐 내 생각이 이 언어에 담기지 않아 불편한 것이다.
언어가 우리 생각을 담지 못했다면 우리 생각을 바꿔야 할까, 언어를 바꿔야 할까? 더구나 우리 생각이 진보한 생각으로 바뀌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언어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어제의 표현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해서 오늘 그 표현이 불편해지는 순간, 그때가 우리에게 줄다리기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바꾸는 노력이 힘들다고 낡은 언어를 바꾸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줄 것인가."
- '언어의 높이뛰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의 높이뛰기가 있어야 진정한 생각의 높이뛰기가 완성된다. 줄다리기가 관전자 입장이라면 언어의 높이뛰기는 행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바꿔보자고 하면 사람들은 불편해 한다. 설사 언어를 바꿔야 한다고 공감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행위자가 되어 언어를 바꾸는 데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저항감을 가져야 한다.
저항하는 과정은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언어의 높이뛰기를 했다면, 우리 생각에 진보가 담긴 것이다. 초등학교로 바뀐 언어는 황국신민의 학교 의식을 벗어났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높이뛰기가 완성될 수 없다. 우리 모두 높이뛰기를 하자. 언어는 사회 진보 지표다. 목표 높이가 올라가는 건 우리 사회 수준이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런 개념으로 높이뛰기라고 이름을 지었다."
"'프로불편러'는 명예로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