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의 소년을 바라보는 로버트 케네디.
구글 이미지 검색, CCL
케네디는 자신의 보수적 입장을 얼마나 강조해야 할지를 두고 보좌관들과 자주 충돌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케네디는 빈곤 문제와 인종 간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흑인들을 위한 정부 지원이 그들의 폭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낌새만 보여도 백인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선거운동을 통해 인종 차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나라의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념보다 이성에 의지하며, 진보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보수적인 전략을 사용하자고 호소했다.
"이 나라가 정의로울 때 가장 사랑합니다"
선거운동 기간 중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은 케네디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연설할 때 벌어졌다. 어떤 학생이 연단으로 올라가던 케네디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 파시스트 돼지야!"라고 소리쳤다. 연설을 시작하자 평화와자유당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베트콩에게 승리를!" 결국 연설을 중단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케네디가 대학생 징집유예와 징집거부자 사면에 반대한다고 하자 한 소년이 고함쳤다. "케네디, 넌 쓰레기야!" 잠시 후 누군가 "옳건 그르건, 이 나라를 믿느냐?"고 물었다. 케네디는 카뮈를 인용하며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만, 이 나라가 정의로울 때 가장 사랑합니다"라고 답했다.
케네디에게 이념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희생과 가족, 공동체와 애국심에 대한 믿음이었다. 케네디가 전쟁 종식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대학생 징집유예에 반대한 이유는, 그가 가진 애국심의 중심 원칙인 '희생의 평등'에 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미국인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따라서 미국 정치와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참여할 동등한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대학생 징집유예는 자기 집안 사람들이 전시에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큰 형 조지프와 매형 빌리 하팅턴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 둘째 형 존도 2차 대전에 참전했고, 나라를 위해 일하던 중에 사망했다.
케네디는 빈곤과 불평등을 개인 역량이나 계급·인종 격차로 인식한 만큼이나 공동체의 문제로 이해했고, 시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했다. 자신이 참여한 첫 번째 예비선거 지역인 인디애나주에서, 케네디는 '배고픈 미국인들에게 먹을 것을'이라는 제목의 연설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 지역 지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인종평등 정책에 반발한 백인 유권자나 정부지출 축소를 바라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공약, 경쟁 상대인 유진 매카시 지지자들을 돌려세울 베트남전에 관한 주장, 인디애나 주민들의 자부심을 북돋울 만한 내용은 없었다. 연설은 인디언 보호구역과 소작농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 같은 것들로만 채워졌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 우리 조국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식량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풍요 속에서도 미국 어린이들은 굶주리고 있고, 그들의 몸과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습니다. 미시시피 델타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고, 그 한 끼조차 빵과 육즙 소스, 옥수수 죽이나 쌀과 콩이 전부인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료 시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미국이 진정 어떤 나라인지, 미국이 진정 무엇을 대표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 케네디는 평소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굶주림과 빈곤을 제거함으로써 베트남전이 이 나라의 영혼에 입힌 상처를 치유하고, 선행을 통해 이 나라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기나 재산, 무력이 아닌 이 나라의 행동에서 만족감을 찾으며 우리나라를 명예로운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애국심은 철지난 유행가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같으며, 보편적 이상과 인류애를 지향하는 세계주의를 위해 버려야할 감정이다. 한국에서 그것은 지난 권위주의 시절 암송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이나 그 시절을 잊지 못한 어르신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애국심은 우리의 정치 교육과 이해에 따라 그런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덕목이자 가치일 수 있다.
우리는 특정 가족, 특정 동네, 특정 직장, 특정 나라의 구성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 특정한 것들의 조합이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며, 내가 속하고 나와 가까운 사람, 지역, 직업, 국가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인류와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법도 배운다. 다른 한편,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정의 같은 보편적 이상도 권리, 의무와 함께 역사와 전통,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이 문장은 미국 역사뿐 아니라 한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의 역사를 이끈 명제이기도 하다. 공동체적 결속 없는 세계주의는 공허하고, 보편적 이상 없는 민족주의는 맹목이다. 애국심은 특정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보편적 도덕주의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 케네디는 이와 같은 사랑의 감정을 정치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